[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33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33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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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1. 둘님, 사랑이어라
그런데 파도 치는 물결 같은 대나무더미에서 마구 날뛰던 조운이 어느 순간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깜짝 놀라 바라보는 둘님의 눈에, 조운의 다리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보였다. 뾰족한 대꼬챙이 끝에 찔린 게 확실했다.

“엄마! 저, 저걸 어째?”

너무나 당황한 둘님은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무작정 달려들어 조운을 대나무더미에서 끌어내렸다. 그런 후에 댓잎자리 위에 놓인 음식물을 아무렇게나 옆으로 밀어 치우고는 그 자리에 조운을 앉혔다. 벌건 핏물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상처를 입은 곳은 왼쪽 다리의 장딴지 부위였다.

“오라버니, 우, 우선…….”

둘님은 급한 대로 자기 저고리 옷고름을 뜯어냈다. 그러고는 얼른 조운의 상처 부위를 동여매기 시작했다. 상처는 생각보다 훨씬 깊었다. 조운은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둘님을 바라보았다. 까만 머릿결이 그의 눈앞에 와 있었고, 그곳에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풍겼다. 조운이 둘님의 몸에서 가장 사랑하는 게 윤기 흐르는 그 머리칼이었다.

“아, 이제 피가 멎은 것 같아요!”

둘님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녀의 눈같이 새하얀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칡넝쿨에 내린 새벽이슬 같았다. 조운은 감격에 찬 얼굴을 했다. 대나무에 찔린 부위는 여전히 욱신욱신 쑤시고 아렸지만 아픈 것도 잊은 그였다. 그는 단풍 든 감잎같이 낯을 붉히며 말했다.

“내가 잘못했어. 둘님……이…… 보기 부끄러워.”

그러자 둘님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같이 가냘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만하기 다행이에요. 대꼬챙이가 뼛속까지 들어갔다면…….”

둘님은 상상도 하기 싫다는 듯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조운은 주먹으로 가슴팍을 소리 나게 땅땅 치며 말했다.

“대꼬챙이가 내 심장을 파고들었으면 좋겠어. 피를 콸콸 내쏟으며 죽을 수 있게…….”

“오라버니! 자학하지 말아요, 제발! 죽으면 같이 죽지 왜 혼자 죽어요?”

둘님이 몸부림치며 울부짖었다. 그 소리는 산자락으로 둘러싸인 그곳 분지를 울리며 사라져갔다. 그들 머리로 날아들던 멧새들이 놀라 달아났다. 조운의 손이 둘님의 작고 둥근 어깨를 어루만졌다. 눈송이처럼 부드러웠다. 얼굴이 눈물로 번질거리는 둘님이 조운의 품으로 와락 안겨들었다. 조운의 손이 가늘고 긴 둘님의 허리를 감쌌다. 눈을 감은 두 사람은 그 자세로 굳어버린 듯 한참 동안 그대로 있었다.

근처 나뭇가지와 잎사귀 위에 내린 햇빛이 유난히 반짝이는 것 같았다. 동네 쪽에선가 낮닭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간간이 개 짖는 소리도 나고 엿장수 가위소리도 어렴풋이 났다. 그러자 주위는 더한층 고요해지는 것 같았다. 세상은 오직 그들 두 사람 그리고 하늘을 날 기구밖에 없는 듯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또 있었다. 그 그림자. 커다란 플라타너스 둥치 뒤에 숨어 그들이 포옹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샛노란 눈빛은 위험한 화약처럼 폭발할 것같이 보였다. 뿌득뿌득 갈리는 이빨은 몇 개나 절단 났지 싶었다. 금방이라도 거기서 나와 이쪽으로 달려올 것 같은 검정고무신이었다. 아주 비정상적인 숨소리가 온 세상을 뒤덮어버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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