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34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34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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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1. 둘님, 사랑이어라
“둘님이를 봐서라도 난 꼭 해낼 거야.”

이윽고 눈을 뜬 조운이 말했다. 둘님이 조운의 품안을 파고들었다.

“언제까지고 기다릴 거예요. 그 일을 이루어내실 때까지…….”

그러던 둘님이 진작 일러주었어야 했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참, 말씀드릴 게 있어요.”

조운도 눈을 들어 둘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연인의 눈빛이 마주쳤다. 불꽃이 이는 듯했다. 둘님의 젖은 듯한 촉촉한 입술과 발그레한 뺨, 깊은 속눈썹이 그림 속 미인처럼 아름다웠다. 낭랑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버지께서 제게 말씀하셨어요. 오라버니가 하시는 그 일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찾으셨다고요.”

조운은 둘님의 몸에서 자기 몸을 떼 내며 큰소리로 물었다.

“뭐? 그, 그게 사실이야? 어, 어디 사는 누, 누구라는데?”

평소의 그답지 않게 퍽 조급해 보였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도 묵직함이 살아 있는 그였다. 그러자 둘님이 야속하다는 듯 가만히 눈을 흘기며 말했다.

“오라버니, 섭섭해요. 그렇다고 저를 그렇게 당장 밀어내버리고…….”

조운은 날리던 연이 나뭇가지에 걸려버린 아이처럼 어쩔 줄 몰라,

“아, 아냐. 그, 그건 아니야. 난, 다, 다만…….”

둘님이 장난기 많은 소녀같이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가 뭐라 하셔도, 저는 그 마음을 다 알아요.”

둘님은 조운의 품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옆으로 밀쳐놓은 음식물을 다시 끌어당겼다.

“보나마나 점심도 안 드셨을 텐데……. 아침은 잡숫셨는지 몰라.”

조운이 상처투성이인 손을 내젓자 둘님이 졌다는 듯 말했다.

“알겠어요. 그 이야기부터 해드릴게요.”

옷고름이 없는 탓에 제대로 여미지 못한 그녀의 옷자락 사이로 풍만한 젖무덤이 얼핏 엿보였다. 순간, 조운의 눈에 광녀의 뽀얀 그것이 거기 겹쳐 보이는 듯했다. 조운은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얼른 고개를 꺾어 외면했지만 이런 소리가 귀를 윙윙 울렸다.

-우리 아기 배고프지? 어서 어미 젖 먹어.

바로 둘님도 모르고 조운 자신도 모르는, 조운의 마음속 그 여자 음성이었다. 그리고 사실을 말하면, 조운 자신은 모르는 게 아니었다. 너무나 잘 알았다. 그냥 모르는 척, 의식의 저 멀리로 쫓아버리고 있을 뿐이었다. 의식의 밑바닥에 억지로 구겨 넣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래야만 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참으로 징글징글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둘님과 함께 있을 때 그 사이에 어김없이 끼어드는 방해물이 그 광녀였다. 아무리 헤아려 봐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둘님과 그 광녀라니? 왜? 무엇 때문에 그 자신이 그러는 것일까? 광녀를 향한 연민? 사내를 취하게 만드는 그 뽀얀 젖가슴? 아니면, 나 연 한 개 더 만들어 줘. 히히히? 그것도 아니면, 나, 너 각시 되고 싶어. 너, 나 신랑 안 될래? 미친년! 조운은 실소를 터뜨렸다. 광녀 생각에 부대끼다 보니 나도 미치광이가 돼간다고. 아니, 애당초 하늘을 나는 수레를 만들겠다고 설치기 시작한 그때부터 미치광이였다고. 미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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