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38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38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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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2. 마귀? 귀인!
시민이 제수 받은 것은 훈련원 주부(主簿)였다. 훈련원은 조선시대 군사의 시재(試才), 무예 훈련 및 병서와 전진(戰陣)의 강습 등을 맡아보는 관청이었다. 조선이 건국되고 새 관제를 발표할 때 훈련관으로 설치되었는데, 훈련원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세조 때였다.

어쨌든 시민은 이곳에서 병서 해석 업무를 관장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필경 과거 볼 때 학과시험에서 탁월한 면모를 보였다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부임해 보니 입에서 한숨이 절로 새나왔다.

‘이대로 놔두었다간 큰 불상사가 나겠구나. 이 일을 어쩐다?’

시민은 긴 고민 끝에 육판서(六判書)의 하나인 정2품 병조판서를 찾아갔다. 광화문 앞 사헌부의 남쪽에 있는 병조 관아의 우진각 지붕은 한껏 위엄을 부리는 모습이었다.

“이번에 훈련원 주부로 봉직하게 된 김시민이라 하옵니다. 대감께 긴히 여쭐 말씀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병조판서는 일개 종6품 벼슬에 있는 자가 감히 국방 최고 책임자인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 사실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경험으로 봤을 때,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자는 대개 불만이 있거나, 아니면 쥐뿔도 없는 주제에 언감생심 승진을 청탁하기 위해 사람을 귀찮게 하는 축이 많았다.

조정에 든든한 줄이 있는 자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나오지 않는다. 미리 근사한 뇌물 한 귀퉁이를 은근슬쩍 내비치고 있다가 이쪽에서 건성인 척 통보하면, 남의 눈에 띌세라 도둑고양이같이 살금살금 접근해 오는 법이다. ‘에잉!’ 기분도 나쁘고 별 볼일 없는 작자라고 판단한 병조판서는, 저 무례한 자의 기부터 꺾어놓아야겠다고 작정했다.

“주부라 했던가?”

시민은 잠자코 듣기만 했다. 병조판서는 어, 이놈 봐라? 하는 듯 또 물었다.

“그렇다면 그대 위로도 줄줄이 상관들이 있을진대, 그들을 거치지 않고 이렇게 곧바로 날 찾아온 건, 위계질서를 무시한 행위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가?”

시민의 낯빛이 확 붉어졌으나 꾹 참아냈다. 병조판서는 조롱조로 나왔다.

“하긴 아직 한참 신출내기인 자네는, 정작 자기가 모셔야 할 상급자들이 누구누구인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군.”

“누구누구인지 고해 올리겠습니다, 대감. 우선 타관을 겸임하는 정2품 지사(知事)가 계시고, 그 아래로 정3품 당상관인 도정(都正), 정3품 당하관인 정(正), 종3품 부정(副正), 종4품 첨정(僉正), 종5품 판관(判官), 그리고…….”

그러자 병조판서가 상을 찡그리며 시민의 말끝을 가로챘다.

“아, 됐네, 됐어. 자네 상관들만 알고 있으면 됐어.”

그러나 시민은 자기 관등인 주부를 시작으로,‘정7품 참군(參軍), 종8품 봉사(奉事), 습독관(習讀官) 30명……’을 내리 마음속으로 다 말하였다. 직책이나 직분을 내세워 부하의 기를 죽이려고 하는 상사의 용렬함에 부아가 치밀었다. 상급자 중에는 하급자가 시키는 대로만 행하길 바랄 뿐, 하급자가 앞서 이야기하는 것 자체부터를 꺼리는 자가 있는데, 보아하니 병조판서가 그런 부류였다. 시민은 기방에 눌러앉아 기생들을 양쪽에 하나씩 끼고서 희희낙락하는 병조판서 모습을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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