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39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39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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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2. 마귀? 귀인!
향기로운 술과 때깔 좋은 과일, 기름진 고기가 산과 바다같이 차려진 상머리에는, 같은 부류의 고급관리들이 기생충처럼 들러붙어 온갖 빛깔의 아부아첨을 늘어놓을 것이다. 시민은 울컥거리는 속을 참으며 쏘아보는 눈빛으로 말했다.

“이제 찾아뵌 용건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병조판서는 여전히 상을 찌푸린 채 마지못한 듯,

“어디 들어나 봄세. 단, 요점만 간략하게 고해 올리게.”

시민은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는 상대를 똑바로 바라보며 건의하기 시작했다.

“소관이 훈련원 관원이 되어 살펴본즉, 군인의 기강이 해이하기 이를 데 없을 뿐만 아니라…….”

병조판서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요점, 요점만 고하도록!”

시민은 잠깐 멈칫했으나 이내 마음을 다잡고,

“요점……. 좋사옵니다. 요점만 고하지요. 하루빨리 대책을 강구해야 되리라 보옵니다. 자칫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그러자 병조판서는 성가시게 달라붙는 파리나 모기를 쫓듯 머리까지 흔들며 또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자네, 훈련원 임무가 무어라고 보는가?”

“시취(試取)와 연무(鍊武)가 아니오이까.”

“그것에 대해 설명해 보게나.”

병조판서는 뒤로 몸을 젖혔고, 시민은 또록또록한 어조로 차분하게 말해나갔다.

“시취의 경우, 가장 중요한 무과를 비롯하여 각 병종(兵種)의 시취와 연재(鍊才)를 관장함이요, 연무의 경우, 병서 습독과 습진(習陣), 그밖에 구체적인 병술 연구와 교습에 힘써야 하는…….”

병조판서 얼굴에 조금씩 당황하는 기색이 살아났다. 시정잡배처럼 무식하고 호기만 부리는 자인 줄 알았더니, 이야기를 나눠볼수록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란 자각이 생긴 것이다. 그렇지만 제까짓 게 어쩌다가 좀 주워들어 알게 된 거겠지 치부한 병조판서는, 시민이 무슨 말을 더 해와도 일절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대로 방치해 두었다간……. 제 말씀을 듣고 계시오니까?”

“듣고는 있네.”

결국 시민은 자신의 힘으로선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엄청난 벽만 확인한 채 아무런 수확 없이 그 자리를 물러나야 했다.

경복궁 광화문 앞 육조(六曹)거리의 높은 하늘가에 새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임금이 행차하는 궐문의 천장에 그려진 주작(朱雀)보다도 살아 있는 새들이 더 행복해 보였다. 시민이 눈어림으로 짐작해 보건대 따뜻한 남쪽 지방을 향해 날갯짓을 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추운 북쪽 지방으로 가는 새들인지도 모른다. 그러자 춥거나 덥거나 철새들처럼 이동할 수 없는 인간들이 새보다도 못하구나 싶었다.

그때 시민은 조만간 다른 고장으로 이임할 숙부 김제갑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사람이었다. 든든한 그가 멀리로 떠난다고 생각하니 시민의 마음은 더욱 스산하고 허허롭기만 했다. 시민은 숙부를 따라가지 못하는 신세를 한탄하며,

‘아, 누가 나를 새처럼 날 수 있게 해준다면, 내가 있는 곳과 숙부님 계실 곳을 오갈 수 있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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