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42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42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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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3. 연지사종을 보는가
그리하여 이윽고 도착한 절 마당에서 그와 마주쳤을 때, 부부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숨에 세월의 산과 강을 훌쩍 뛰어 건넌 느낌이었다. 모두가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더니 진정 그런가 싶을 일이었다.

“정말 그때 그 스님이 맞습니까?”

술명은 그 탁발승이라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렇게 묻고 있었다. 그러자 그도 아주 감격스러워하는 빛을 감추지 못하고 염불부터 외고 나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부처님의 뜻인 것을!”

부부 또한 자신들도 모르게 합장을 하며 입 속으로 부처님을 찾았다. 다시 한 번 모든 게 그 스님의 예언대로 되고 있다는 생각에 강한 전율마저 느꼈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상하다거나 무섭다는 감정은 전혀 없었다. 절집 특유의 안온한 분위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부부는 내내 그들을 쫓던 무언가에서 풀려난 듯한 기분이었다.

“스님께서 이 절에 계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박씨가 감개무량한 얼굴로 말하자 스님이 빙그레 웃었다.

“두 분의 자제분인 조운이를 위한 부처님 계시가 아니겠습니까?”

그는 예전에 비해 주름살은 좀 늘어났지만 아주 안정된 모습이었다. 물론 그 자신이 지어주긴 했지만 조운이란 이름도 용케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지금 조운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요?”

거기 탑 그림자가 그의 오른쪽 어깨 위로 바랑처럼 비스듬히 걸쳐져 있었다. 회색빛 탑신 하반부에 어린아이 주먹같이 아주 조그만 애기부처들이 정좌하고 있는 것도 보였다. 그날 그가 들고 있던 바리때를 떠올리며 술명이 대답했다.

“스님 말씀 그대롭니다. 오직 날기 위한 일념에 빠져…….”

스님은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당부하듯 말했다.

“두 분 심려가 무척 커시겠습니다. 허나, 어쩌겠습니까? 그게 모두 조운이와 이 나라를 위한 부처님의 깊으신 뜻이겠거니 여기시고, 힘이 들더라도 끝까지 조운이가 하는 대로 지켜봐 주십시오.”

부처님 머리같이 곱슬곱슬하고 4월 초파일을 전후해 만발한다 하여 불두화라고 부르는 꽃을 바라보고 있던 박씨가 말했다.

“오늘 스님을 만나 뵈니 저희 마음이 정말 평온합니다. 진작 뵈었더라면 그렇게 애를 태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말이에요.”

술명도 아내 말에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스님께서 불민한 저희 부부를 잘 이끌어 주십시오.”

법당으로부터 흘러나온 은은한 향불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향은 날개가 없는데도 어떻게 냄새를 새처럼 잘도 공중으로 날려 보내는지 부러운 술명이었다.

“도학(道學)의 깊이가 얕은 개천만도 못한 빈도더러 그 무슨 말씀을?”

스님이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여전히 깡마른 그의 몸에서는 오래 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것처럼, 또 마른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불가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박씨가 말했다.

“아니에요, 스님. 저희는 제 자식의 각별한 운명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아직도 스님이 누구신지도 잘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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