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44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44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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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3. 연지사종을 보는가
부부는 종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우선 독을 거꾸로 엎어놓은 것같이 위가 좁고 배 부분이 불룩하다가, 다시 종의 입구 쪽으로 가면서 점차 오므라드는 모양새부터가 특이했다. 그리고 용뉴 부분이 용머리 모양이 아니라 무슨 괴수의 모양을 보이는 것도 예사롭지 않았는데, 그것은 가늘고 짧은 목을 구부리고 입을 벌려 마치 종을 물어 올리는 듯한 형상이었다.

“오래된 종 같아요.”

“그렇지요. 저 833년에 주종된 통일신라시대의 종이니까요.”

“예? 그, 그렇게나……?”

부부는 놀라 얼굴을 마주보았다. 보묵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여기 종신을 좀 보십시오. 파도무늬가 얼마나 정교하고 아름답습니까? 그리고 괴수가 목을 직각으로 꺾어 연결된 굵은 저 부위를 음통이라고 하지요.”

부부는 보묵 스님이 말한 그 음통을 자세히 보았다. 흡사 유두처럼 돌출된 연꽃봉오리 모습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보묵 스님은 종의 위쪽과 아래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상세히 말해주었다.

“종신의 윗부분을 상대(上帶), 아랫부분을 하대(下帶)라고 부르는데, 위에는 구슬무늬 띠가 한 줄, 그 밑에는 섬세한 구슬무늬 띠가 두 줄로 배치되어 있는 게 보이시지요?”

부부는 그것에 푹 빠져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보니 한층 눈에 잘 들어오는 범종이었다. 보묵 스님은 연꽃으로 이야기를 이끌었다.

“더러운 연못에서 곱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연꽃은, 사바세계에서의 불법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극락정토에 표현되는 연화생(蓮花生)을 뜻하기도 합니다.”

술명은 아까부터 생각해왔던 말을 했다.

“우리 조운이도 데리고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언제 그럴 기회가 반드시 있겠지요. 자, 이번에는 이 연지사종에서 그중 뛰어나다고 평가 받는 부분을 보도록 합시다.”

부부의 눈이 가일층 빛났다. 조운의 눈에 영채(映彩)가 도는 건,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 때문일 것이다. 보묵 스님이 가리킨 부위는 종의 가장 볼록한 부위였다.

“아, 저건 악기를 켜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요?”

박씨 눈이 남편보다 밝은 모양이었다. 술명이 아내 말을 듣고 잘 살펴보니, 과연 구름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무슨 악기를 켜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천의(天衣) 자락을 휘날리며 두 팔을 벌려 장고를 치고 있는 저 비천상이야말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지요.”

보묵 스님의 그 말이 아니더라도 부부는 열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쩌면 저렇게도 정교하고 아름답게 새겨 넣을 수가 있을까? 그것은 금방이라도 살아 종신 밖으로 나와서 움직일 것만 같았다. 너울거리는 천의가 날개를 연상케 했다.

부부의 눈에, 구름을 타고 있는 그 비천상 위로 아들 조운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조운이 하늘을 날게 된다면 저런 모습일 것 같았다. 하지만 조운은 하늘에 사는 선녀가 아니라 땅을 파먹고 사는 농군의 아들이었다. 지상에 살아야 할 인간이 감히 천상까지 넘본다는 죄로 천벌이 내려 공중에서 추락이라도 하게 된다면? 신체 불구자가 되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눈앞이 캄캄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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