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47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47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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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1. 검은 대나무 거리에서
한편, 시민은 달랐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는 종5품 판관에 올랐다. 훈련원의 모든 영역 업무를 관장하게 된 것이다. 병서의 해박함을 인정받은 결과였다. 그런데 형편없는 병기 보관 창고는 끝내 또다시 시민의 등짝을 떠밀었다.

“이게 누구신가? 승진했다는 소식은 들었지. 늦었지만 축하하네.”

병조판서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능글능글한 웃음을 흘렸다.

‘또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려는 속셈이구나. 하지만 이번에는 무슨 확답을 받아내기 전까지는 절대 순순히 물러가지 않을 테다.’

단단히 벼르고 온 시민은 일사항전의 태세로 나갔다.

“지난번 말씀올린 대로 군대 기강도 문제거니와, 군기(軍器) 또한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유사시에 쓸 만한 군인과 병기가 없습니다.”

“도대체 본관더러 무얼 어떻게 하란 소린가?”

병조판서 이마에는 그새 주름살이 나이처럼 하나 더 늘어나 있었다. 눈빛도 그전보다 흐려 보였다. 시민은 강하게 나갔다.

“군기를 보수하고 훈련을 강화해야 합니다.”

병조판서는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지금 무슨 얘길 하는 건가, 으응?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조선국은 200여 년 동안 태평성대를 누려오고 있어. 일찍이 지금같이 화평한 시대는 없었네. 대궐에도 항간에도 춤추고 노래하는 소리가 흘러넘치지. 이런 마당에…….”

“유비무환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만약을 대비하는 게…….”

“부정 탈 소릴랑 입에 올리지도 마시게. 유비무환이 아니라 유언비어 살포로 붙들려 갈 수도 있네.”

“군기를 보수하고 훈련을 강화해야 합니다, 대감!”

시민은 또렷또렷한 목소리였고, 병조판서도 죄인 신문하듯 했다.

“요즘 같은 태평성대에 군기를 보수하고 훈련을 강화하라는 건, 올바른 정신이 박힌 사람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야. 자네 주장처럼 만약에 말일세. 훈련원 군사들을 조련하고 병장기를 만들면, 그것은 결국 조정과 백성을 두려움과 근심 속으로 몰아넣는 결과밖에 안 되지. 그러니 망언도 그런 망언이 없어! 흐-음!”

“그래도 나중에 외세에 당하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낫사옵니다!”

“허어, 누구는 왕년에 젊은 시절이 없었던 줄 아는가? 객길랑 더는 부리지 말게. 아무리 혈기 넘칠 나이라 해도 그따위 분별없는 소릴……. 에잉!”

“이건 객기나 혈기가 아니옵니다, 대감.”

“뭐라고? 그게 아니라면 무어야?”

“그것도 모르시면서 그 자리에 앉아 계시는 것이옵니까?”

“이런 발칙한!”

급기야 두 사람이 내지르는 고성이 천장을 찌르고 벽을 무너뜨릴 지경까지 돼버렸다. 문밖에 놀란 사람들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시민이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 것은 그런 와중에서였다. 곧이어 경악할 일이 터졌다. 군모(軍帽)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시민의 발이 그것을 짓밟아 사정없이 부숴버렸다. 병조판서는 들었다.

“대장부가 이것이 아니라면, 어찌 능히 남에게서 모욕을 당하랴?”

그 길로 시민은 사직서를 써서 던져버린 후 훌훌 털고 나왔다. 시민을 기다리는 것은 오직 하나, 낙향의 손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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