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와 교육
청소와 교육
  • 경남일보
  • 승인 2014.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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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준 (진주동명고 교감)
영화 ‘플랜맨’이 인기리에 상영 중이다. 주인공 정석은 매사를 분단위로 쪼개어 알람에 맞춘 계획적인 생활을 한다. 집안과 근무처(도서관)의 책상과 모든 집기들이 정리정돈되어 있어야 안심하는 성격은 깔끔함을 넘어 병적이다. 그러나 알람과 손톱으로 대표되는 계획과 청결의 트라우마에서 탈피하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연전에 진주 인근의 한 특목고 학부모가 학생들의 기숙사에 청소하러 갔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초등학생도 아닌 고등학교 학생들의 공부시간을 확보하려고 부모들이 순번으로 학생들의 숙소까지 청소를 한다는 것은 명분이나 교육적 당위성을 얻기가 힘들다.

초등학교 화장실 청소용역을 시행한 지 5년이 되었고, 일부 중학교도 시행하다가 너무나 더러워져 불결함을 감내 못한 용역업체들의 기피로 다시 학생들의 몫이 된 학교도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작년 11월에 경남교육청은 전체 중·고등학교에 2014년 학교회계 예산편성 시 각급 학교의 실정에 맞게 화장실 청소 용역비 예산을 편성토록 지시했다. 교육감께서 “도내 전체 학생들에게 위생적이고 청결한 교육환경이 제공될 수 있도록 학교장들의 각별한 관심과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기다”고 덧붙인 이 사업은 학생들을 지극히 사랑하여 그들의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덜어주고자 한 취지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육적인 문제와 경제적인 측면에서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청소용역으로 쾌적한 교육환경 조성과 학생들의 부담감 해소, 그리고 일자리 창출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사제동행을 외치면서 모든 것을 외부에 맡기거나 편해지려고만 하려는 태도는 학생들의 자립심이나 책임감, 자율성이나 협동심 배양을 저해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별도의 지원 없이 기존 예산에 청소용역비를 산입한다면 그래도 열악한 학교 재정의 황폐화는 불 보듯 뻔할 것이다.

옛 선비들은 궤좌와 과언(寡言)공부를 했다. 궤좌공부는 ‘꿇어앉아서 하는 공부’로 정신을 해이하게 하지 않고 마음을 가다듬는 공부이며, 과언공부는 ‘말을 적게 하는 공부’로 분명하게 그 뜻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함부로 입을 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우선하는 학문의 자세에 쇄소응대(灑掃應對)가 있다. ‘자고 일어나 정돈하고 마당 쓸고 남을 상대하는 것’이 공부의 가장 기본이라 생각했고 실천했다. 남명 조식도 퇴계에게 보낸 편지에서 “물 뿌리고 비질하는 법도 모르면서(灑掃應對) 입으로는 천하의 이치를 말하고 헛된 명성을 훔쳐서 세상을 속인다”고 질책했다. 학생들이라 해서 예외겠는가?

영화 플랜맨의 주인공 같은 생활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에 5~10분 정도 청소한다고 공부에 지장을 준다면, 청소하는 그 작은 수고로움도 견디지 못한다면, 그렇게 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해도 그 공부는 불교식의 도로아미타불이 될 것은 자명하다. 아이들을 걱정하기 전에 어른들의 대승적인 각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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