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72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72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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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3. 비차, 나는 수레
자신이 가장 아끼는 담뱃대걸이가 망가지는 듯한 소리를 들은 윤달규가 놀랐는지 급히 바로 돌아앉았다. 경악한 것은 상돌도 마찬가지였다. 상돌은 정말 미치광이를 보듯 눈을 있는 대로 크게 치뜨고 조운을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조운은 하던 짓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원래 긴 담뱃대를 여러 개 걸쳐놓게 된 것이기에 그의 짧은 담뱃대는 걸쳐 세워지지 못하고 계속 넘어지기만 했다.

그것은 그방에서 거의 유일하게 지체 높은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대단히 고급스러운 것이었다. 아랫부분에는 담배를 담는 대꼬바리를 내려놓는 재떨이같이 생긴 낮은 단이 있고, 그 중심에다 기둥을 세워 담뱃대를 걸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윗부분에 만들어져 있었다. 소나무 변죽을 붙인 하단부 은행나무판도 훌륭하고, 국화무늬를 음각하고 여러 개의 박쥐형 걸이를 합해 꽃모양을 이룬 상판부도 멋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담뱃대를 방바닥이나 담배통 받침에 걸쳐놓는 판에, 그런 근사한 공예품을 어떻게 수중에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의 애장품임에는 확실해 보였다. 그는 조운의 손에서 장죽걸이를 빼앗아가며 호통을 쳤다.

“미친 사람 같으니라고! 어디서 남의 귀한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는 거야?”

조운은 ‘히히히’ 소리를 내려고 하다가 그만두었다. 일단은 돌아앉은 그를 바로앉혔으니 그 미치광이 짓은 효과를 본 셈이었다.

조운은 혹시라도 어디 손상을 입은 부분이 없나 하고 열심히 장죽걸이를 살피고 있는 윤달규에게 다시 간청하기 시작했다.

“그 멀리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도중에 목숨을 잃을 뻔했던 위험도 여러 번 겪었습니다. 이건 저희들 일신상의 영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나라를 위한…….”

“허어, 아직 젊은 사람들이 가는귀가 멀었소?”

윤달규는 울컥하는 빛이었으나 한 번 혼이 난 탓인지 억지로 참는 듯,

“그 비법을 내보이느니 차라리 내 목숨을 내놓겠소이다. 으흠!”

참으로 모질고 비정한 사람이었다. 하도 그가 잡아떼니 나중에는 그게 헛소문이 아닐까 여겨졌다. 더욱이 조운은 그집에 들어설 때부터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하늘을 날 수 있는 기구 같은 것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어쩌면 비밀 장소에 감춰놓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족들도 없는지 다른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로부터 무려 서너 시간도 더 넘게 쉬지 않고 죽기살기로 매달렸지만 헛수고였다. 그가 나중에는 이렇게까지 나왔다.

“지금 당장 내 집에서 나가지 않으면 관아 포졸들을 부르겠소. 이건 엄연한 남의 집 무단침입이오.”

“그래도 한 번만 더 생각을 달리…….”

“그러면 조금이라도 알려주시면…….”

두 사람은 빌고 또 빌었다.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꺼진다는 말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가 말이다. 아니, 그보다도 여기서 비법을 알아내지 못할 경우, 어쩌면 그 일은 영영 수포로 돌아갈 공산이 컸다.

조운의 마음 위로 절망과 고통의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것은 언젠가 대밭 속에서 훔쳐본, 정사 중에 여자의 이빨에 깨물린 사내 등에서 배어나오던 피보다도 처절하고 검붉은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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