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95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95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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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1. 길을 빌려 달라
아직은 찬 기운이 느껴지는 4월 중순, 축시(丑時, 오전 1시∼3시)의 공기를 헤치고 왜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완전히 예상을 뒤엎는 진군이었다.

“장군! 적이 부산진 앞바다를 통하지 않고 우암동 방면으로 상륙하여, 육로로 우리가 있는 부산진성으로 접근해오고 있습니다!”

부하 군사의 긴급한 보고를 접한 정발은 왜군의 저의를 간파했다.

“교활한 놈들! 우리 조선군의 방어를 피하기 위한 술책이로구나.”

저들의 움직임은 들쥐같이 민첩했다. 완전히 날이 밝기도 전에 이미 성을 겹겹으로 포위해버렸다. 뿐만이 아니었다. 더욱 나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놈들이 성 주위의 마을을 모조리 불사르고 있습니다.”

“무어라? 군인도 아닌 민간인 집들을……?”

그러나 분노를 느낄 틈도 없었다. 홀연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들려왔다. 누구든 그 소리만 들어도 겁을 집어먹을 만했다. 왜군은 신무기인 화승총을 무차별 발사하며 성을 공격했다. 나는 새도 쏘아 맞혀 떨어뜨린다는 조총(鳥銃)이었다. 총탄 터지는 소리, 화살 날아가는 소리, 칼 휘두르는 소리, 비명소리 속에 처절무비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정발은 선두에서 병사들을 지휘, 격려했다. 적의 총알과 화살이 날아와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의 몸은 마치 아군 전체를 위한 커다란 하나의 방패 같았다.

“최후의 일각까지,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우자. 무인답게 죽을 각오를 하라!”

용장 밑에 겁졸 없다 했다. 부하들도 기가 죽지 않았다.

“죽어도 다시 살아나 저놈들을 물리치겠습니다.”

대포 소리가 땅을 뒤흔들고 칼날의 섬광이 하늘을 찔렀다. 정발이 입고 있는 검은색 전포(戰袍)는 왜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 전포의 검은빛이 번득이는 곳에는 반드시 적의 시체가 널브러졌다. 왜군은 서로 경계하여 말했다.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장군에게는 절대 가까이 가지 마라.”

마음만 먹으면 조선 성 하나쯤이야 쉽게 날려버릴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소서행장과 종의지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절대 다수의 병력으로도 공략의 무력함을 깨달았다. 앞으로의 전투가 결코 수월치 못하리란 예감이 들었다.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우리 신풍도 무력할 뿐입니다.”

어깨가 축 늘어진 종의지를 향해 소서행장이 한숨 쉬듯 물었다.

“무슨 방도가 없겠느냐? 실패한 원인도 있을 게고…….”

진동하는 왜군 시체 냄새를 맡고 몰려든 까마귀들이, 수성군이 몸을 숨기고 공성군에게 총이나 활을 쏠 수 있도록 성벽 위에 설치한 낮은 성가퀴 위에 새카맣게 앉아 있었다. 그것을 올려다보고 있던 종의지가 문득 생각해낸 듯,

“서문은 너무 견고합니다.”

소서행장이 투구 끈을 조이며 말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그의 투구에 꽂힌 초승달 모양의 ‘마에다테’가 쇳조각 특유의 싸늘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패랭이와 유사한 조선군의 전립(戰笠)과는 풍기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공격할 다른 쪽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조선군이 우리 동태를 눈치 채지 못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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