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11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11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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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2. 최초의 승리, 해유령 전투
소서행장이 이끄는 왜군 선봉대가 문경을 공략한 것은 4월 26일이었다.

성은 텅 비었고 조선 백성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새도 나비도 날지 않았다. 향기 없는 꽃들만 피어 있는 듯했으며, 바람 끝에는 답답한 기운만 묻어났다. 꼭 죽음의 성 같았다.

“천하의 겁쟁이들 같으니라고. 내 칼이 운다, 울어.”

“이거 너무 싱겁게 이기니 재미가 없잖아? 낄낄낄.”

“조선은 우리 손에 들어왔고, 다음 차례는 명나라다.”

그런데 승리에 도취한 왜군들이 막 관아 앞을 지날 때였다. 어디선가 별안간 화살이 소나기같이 쏟아졌다.

“으악!”

방심하고 있던 왜군들이 화살 숫자만큼 나가떨어졌다. 바로 숨이 끊어진 자도 있었고, 고통을 이기지 못해 땅바닥을 구르는 자도 있었다.

“한 놈도 살려주지 말고 모조리 죽여라!”

“동포의 복수를 해야 한다!”

현감 신원길을 비롯한 20여 명의 결사대가 숨어 있다가 기습을 한 것이다. 명종 때에 태어나 선조 9년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된 후, 임진년 그해에 문경 현감으로 부임한 신원길이었다.

결사대의 활약상은 눈부셨다. 과연 죽기를 각오하고 있는 힘을 다해 싸울 것을 결심한 부대답게, 소수의 병력으로도 적군을 잡초 베어 넘기듯 하여 왜적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일당백(一當百)의 전범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공격에 우왕좌왕하던 왜군이 재정비를 한 후부터 신원길 부대는 열세에 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숫자의 왜군 열을 죽여도 적은 숫자의 조선군 하나가 죽으니, 군세(軍勢)에 미치는 영향은 조선군에게 더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얼마나 결사항전 하였을까. 결국 신원길은 사로잡혔고 곧 왜장 앞으로 끌려갔다.

“네가 대장이냐? 훌륭한 결사대를 가졌구나.”

왜장 오도순현은 몹시 부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규슈 정벌 당시 풍신수길을 도와준 공으로 영지를 인정받은 오도순현. 그로부터 불과 2년 후에 두창으로 죽게 되리란 것을 그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적이지만 그 기상이 존경할 만하다. 어떠냐? 항복할 생각은 없느냐?”

왜장 대촌희전도 한껏 부드러운 목소리를 지어내어 회유하기 시작했다. 오도순현과 마찬가지로 규슈 정벌 때 영지를 인정받은 대촌희전. 훗날 그는 소서행장과 사이가 나쁜 가등청정의 영향으로, 기독교에서 일본 불교 가장 큰 종파의 하나인 일련종(日蓮宗)으로 개종하고 기독교도를 탄압하다가 그들에게 독살 당한다.

“우리에게 협조하면 목숨 보장은 물론, 잘살게 해줄 것이다.”

신원길이 일그러진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죽여라.”

왜장들은 사지가 절단되는 참살을 당한 신원길의 사체를 보며 말했다.

“조선군과의 싸움은 결코 수월한 싸움이 아닐 것이다. 바람 속에 섞여 있는 피 냄새가 심상치 않도다.”

“만약 조선 민관군이 하나가 되어 대항해온다면, 군사 수와 우수한 무기만 믿고 침공한 우리 일본군은 참패를 면치 못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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