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 우체통
하늘나라 우체통
  • 경남일보
  • 승인 2014.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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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숙자 (시인)
서울의 작은 골목 공간 서촌갤러리에서 ‘박예슬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유치원 때부터 수학여행 이틀 전까지 그린 그림들에는 열여덟살의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살아서 보자’는 예슬이가 남긴 마지막 음성이 아직도 휴대폰 동영상 속에서 살아 있고, 금방이라도 엄마·아빠를 부르며 들어올 것만 같은 딸을 기다리는 부모는 세월호 아이들을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전시회를 준비하였다고 한다.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었던 딸을 끝내 살아선 볼 수가 없게 되었지만, 전시회는 예슬이 한명으로서가 아니라 희생된 단원고 전체 학생들로 기억하는 자리가 되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해 불볕더위 속에서 행진을 계속하며 걷고 또 걷는 사람들, 장맛비가 쏟아지는 국회 본청 앞에서 서울 한복판 광화문광장의 천막 아래서 자식을 잃은 아버지들이 특별법 처리를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여서 구조될 수 있었던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어째서 제대로 수용이 되어지지 않는 것인지 몹시 답답한 일이다. 어른들이 잘못해서 아이들을 떠나보낸 건데 너무 빨리 잊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가슴이 아프다. 화르르 분노하고 슬프했다가 금세 돌아서면 잊어 버리는 우를 언제까지 범할 것인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에게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봉사단이라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명대를 엎었다고 한다. 역지사지로 생각한다면 차마 서명대를 엎기까지야 할 수 있겠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유가족들은 쓰러질 각오로 싸운다고 했다. 부디 아버지들이 쓰러지기 전에 대책이 세워지길 바란다. 이만하면 되었다고 이젠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게 부모입장이고 유족들 입장이라면 그런 말이 쉽게 나올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참사 100일을 맞아 진도 팽목항에는 ‘하늘나라 우체통’이 세워졌다. 노아의 방주형태로 160㎝ 크기인 우체통 옆에는 ‘슬퍼하지 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희생된 단원고 학생이 남긴 문구를 새겼다. 짧고도 단호한 기록이다.

우체통을 실은 방주가 힘차게 항해하는 모습을 형상화해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를 건설하자는 의지를 담았다고 한다. 유가족들의 슬픔과 아픔을 담은 편지들과 방문객들이 남기는 편지들이 우체통에 모이면 일주일에 한번씩 모아서 상담자들이 답장을 해줄 계획이고, 일년 뒤에는 문집을 내어 가족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라고 한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희망으로 남은 사람들끼리 안간힘을 쓰며 서로를 위로하며 격려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꿈이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기를 바란다. 아이들의 꿈을 기억하는 한 세월호는 우리 가슴에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희망과 절망의 어디쯤을 가고 있는 것일까.

예쁜 액자에 담겨 예슬이의 유작전이 열리는 갤러리에는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이제는 한점 그림으로만 남아 한송이 못다 핀 꽃이 된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사랑과 애도의 마음을 함께 담은 편지는 팽목항의 빨간 우체통으로 사뿐히 날아가 천상으로 전해질 것이다.

아비규환같은 이 세상에서 아이들이 나비처럼 하늘을 향해 훨훨 날아올라 자유를 찾기를 바란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우체통은 끝내 가장 아름다운 우체통으로 남을 것이다.

한여름 땡볕에 땡글땡글 뜨거워지는 것들, 땀 흘리는 시절이 아름답다. 마른장마 속 비가 왔다가 개었다가 도무지 흡족하지가 않다. 하지만 변덕스러운 여름 장마는 언제 또 뒷심을 발휘할지 모르겠다. 뜨거워지는 것들의 시간을 들여다본다. 여름날의 치열한 땀방울들이 모여 세상의 가을을 불러올 것이다. 눈물겨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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