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제국을 건설한 콘래드 힐튼
그는 텍사스 전역에 걸쳐 호텔을 매입하거나 지어나가면서 1925년에는 댈러스 힐튼을 시작으로 1927년에는 애빌린 힐튼, 1928년에는 와코 힐튼, 1930년에는 엘 파소 힐튼을 오픈하였다. 그는 텍사스를 벗어나 처음으로 뉴멕시코에서 안달루시아 호텔을 건립하였다. 그는 호텔 경영 20년 차에 접어들면서 서부 쪽으로는 캘리포니아까지 동부 쪽으로는 시카고와 뉴욕에 이르기까지 확장을 거듭해나갔다. 시카고에 있는 세계 최대의 호텔이었던 스티븐스 호텔(Stevens Hotel)과 뉴욕의 전설적인 호텔 월도프 아스토리아(Waldorf-Astoria)를 인수하면서 그러한 확장세의 정점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1946년에는 힐튼 호텔 체인 그룹(Hilton Hotels Corporation)을 결성시키고 1948년에는 힐튼 인터내셔널을 설립하게 된다. 그래서 힐튼은 38개 도시에 워싱턴 D. C.의 메이플라워 호텔을 비롯하여 시카고의 호텔 팔머 하우스, 뉴욕의 플라자 호텔과 월도프 아스토리아 등 188개의 호텔을 소유하고 해외에 54개의 호텔을 소유하게 된다.
1925년에 매리 A. 배런(Mary Adelaide Barron)과 결혼하여 그 다음 해에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처음으로 결혼하게 되는 콘래드 힐튼 주니어(Conrad Nicholson “Nicky” Hilton, Jr. : 1926-1969)를 낳고 1933년에 윌리엄 배런 힐튼을 낳게 되지만 1934년에 이혼하고 만다. 대공황 기에는 여러 개의 호텔을 매각하기도 하면서 파산 직전까지 몰렸지만, 재기하는 데 성공하여 1946년에 힐튼 호텔 코퍼레이션을 설립하고 주식을 상장하게 된다. 그는 호텔 경영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여 1930년에는 힐튼 호텔 최초의 고급 호텔인 플라자 호텔을 개업하였다. 1942년에는 여배우 자 자 가보르(Zsa Zsa G?bor)와 결혼하였지만 1947년에 딸이 태어나자 이혼하고 만다. 1954년에는 스태틀러 호텔을 인수하면서 호텔 업계에서는 최대의 기업으로 우뚝 서게 된다.
그는 1957년에 자신의 자서전 ‘나의 손님이 되어주세요(Be My Guest)’를 출간하였다. 그는 자서전에서 열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열정적이거나 열정적이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이다. 열정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면 실패와 지루함을 겪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1966년에 그의 아들 배런에게 사장 자리를 물려주고 그는 회장에 취임하게 된다. 1976년에는 매리 F. 켈리(Mary Frances Kelly)와 세 번째로 결혼하여 죽는 날(1979)까지 함께 살게 된다. 그는 1979년 1월 3일,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서 91세로 세상을 떠났다. 콘래드 힐튼은 유산의 일부를 생존해 있는 두 형제들과 조카들, 그리고 딸에게 줄 것을 부탁하고 나머지의 엄청난 유산을 1944년에 전 세계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설립한 콘래드 힐튼 재단(Conrad N. Hilton Foundation)을 위해 남겼다.
/경상대학교 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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