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 신화를 창조한 리바이 스트라우스
1848년 여름, 캘리포니아 주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많은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서 서부로 모여드는 이른바 골드러시가 시작된다. 수많은 사람들은 주로 포장마차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는데 스트라우스 형제들도 서부에 많은 수요가 있을거라는 기대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게 된다. 1853년 3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리바이는 서부 개척자들의 수요에 따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물건들을 팔기 시작했다. 옷감을 비롯하여 다양한 용도의 옷들과 일용품들에 이르기까지... 서부지역의 중심지였던 샌프란시스코는 갑자기 불어나는 인구로 심각한 주택난에 직면하게 되는데, 집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궁여지책으로 여기저기 텐트를 치고 살았다. 어떡하면 돈을 더 많이 벌까를 궁리하던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텐트 장사를 생각하게 된다.
리바이는 텐트용 천을 짜는 공장을 세웠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상인이 찾아와 군부대에 납품할 텐트용 천을 주문하였다. 스트라우스가 계약한 텐트 천의 양은 엄청나서 군납용 텐트 천을 생산하는데 전력투구하였다. 그런데 군납용 텐트 천을 주문한 상인이 견본품을 요구해서 보냈더니 견본품 품질검사가 불합격이라는 통지를 해왔다. 이유는 염색이 잘못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상인이 주문한 대로 청색으로 텐트 천을 대량으로 생산했는데 군에서 요구하는 색은 녹색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자 스트라우스는 창고에 가득 쌓인 천들을 보며 실의에 빠져 술집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광부가 속옷 차림으로 바지를 깁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더 이상 기울 데도 없는 누더기 상태의 낡은 바지였다. 그때 바로 스트라우스의 뇌리를 스쳐가는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바로 창고에 가득 쌓인 텐트용 천으로 ‘세상에서 가장 질긴 바지’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얼마 후 청색의 텐트 천은 간편한 작업복으로 변했고 이렇게 만든 ‘허리까지 오는 작업복’ 이 매우 질기고 튼튼하다는 소문이 퍼지자, 캘리포니아의 금광, 버지니아의 은광, 그 밖의 철도 작업장 근로자들까지 리바이의 청바지를 앞 다투어 사 입기 시작하였다. 1850년 리바이 스트라우스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인 장사에 돌입하게 됐다.
스트라우스는 청색 작업복 바지에 ‘블루 진’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리바이스란 브랜드는 ‘리바이(Levi)가 만든 바지(Levi‘s Pants)’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바지 호주머니에 박힌 쇠붙이 리벳은 바지 호주머니에 넣은 무거운 광석 때문에 쉽게 해어지거나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1872년에 재단사 제이콥 데이비스가 리바이에게 바지 주머니의 리벳에 대해 아이디어를 제시하여 특허를 획득하게 된다. 1928년에는 Levi’s 상표를 정식으로 등록하였다. 질긴 소재로 각광받게 된 진은 시간이 가면서 젊은이들의 야성과 반항적 이미지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고 1960년대 이후 영화에서 젊은 세대의 생활양식을 보여주는 단골복장으로 등장하게 된다. 리바이스의 브랜드 철학은 ‘젊음이 넘치는 개성’(Youthful Individuality)이다. 오늘날 청바지의 대명사 리바이스는 이런 점에서 코카콜라, 맥도날드와 함께 미국주의의 세계화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리바이스의 매출은 60억 달러 이상으로 세계 진 시장 점유율 1위를 자랑하고 있다.
/경상대학교 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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