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주 (법학박사, 전 진주·창원경찰서장)
5년 전 공직생활을 정리하고 와룡산 기슭에 기거하면서 집 뒤켠에 텃밭을 일구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도 무, 배추, 상추, 파 등을 심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수룩해지는 해거름이면 벌레도 잡고 잡초도 뽑곤 했는데, 모기나 벌레에 약한 아내는 손이나 발, 엉덩이에 수없이 공격을 당하면서도 돋아나는 작물들을 애지중지 보살피며 파랗게 자라나는 채소들을 바라보고 무공해라며 즐거워했다.
텃밭의 채소는 먹는 재미보다 기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파종을 하고 날마다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면서 새싹이 나와 하루하루 자라나는 것을 보는 것은 신기로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새싹들이 피어나 아직 어린잎일 때는 나방이벌레와 메뚜기들이 인정사정없이 갉아먹어 치운다.
앞, 뒷산에 후드득후드득 알밤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한낮이면 메뚜기와 한판 전쟁을 치르고, 서늘한 저녁 무렵이면 나방이벌레를 잡으면서 새내기 채소들이 무사히 빨리 자랄 수 있게 해 달라며 지리산 산신령께 빌고, 굽은 허리를 펼 때 한 뙈기 텃밭은 뒷산마루에 걸려 있는 노을빛을 받으며 가을 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알밤나무, 감나무, 고로쇠나무, 산초나무, 돌배나무 등 나무들도 점차 쌀쌀해지는 바람에 입들이 퇴색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문득문득 지친 기색으로 가을의 끝자락으로 달려가고 있다.
9월 중순이 지나서 심은 김장 배추는 너무 늦은 감이 있어 제대로 성장하게 될지 걱정이다. 무는 자리를 잘 잡고 자라고 있으니 한 두 세 번 솎아 주고 한 뼘 간격으로 한 놈씩만 남기면 된다. 겨울에 먹기 위해 심은 얼갈이와 시금치 싹은 연약한 모습이 애처롭다.
삼국지의 영웅 유비가 자기 땅도 없이 관우, 장비 등 형제들과 조조의 밑에 있었을 때 천하제패의 야심을 감추기 위해 정사에는 관심이 없는척하며 텃밭에 야채를 가꾸던 때가 있었다. 텃밭에 서서 작물의 안위를 생각하는 마음은 무지렁이 촌부나 영웅호걸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모든 사람들이 텃밭을 가꾸듯이 진정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순수하고 정감 있는 세상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강선주 (법학박사, 전 진주·창원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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