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시월에 그리워지는 것
가는 시월에 그리워지는 것
  • 경남일보
  • 승인 2014.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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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야 (시인, 수필가)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시월이 되자 노벨상 수상자들의 이름이 발표되는데 이 나라 한 구석의 직장인 한 사람은 승진에서 밀려난 게 억울하다며 울분을 토했다. 화려한 노벨상 수상자들과 승진에서 밀려난 이 나라의 일개 직장인과는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 일개 직장인이 승진에서 밀린 것을 수긍하기보다는 울분을 토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잠시 일었다가 사라지고 말 울분이 아니라 오래 가지고 가지 싶었는데, 그는 실력에서 탈락한 게 아니라 학벌과 인맥에서 밀린 것이라 했다. 실력으로 치면 자신이 승진하는 게 마땅한데 학벌에서 뒤지는데다가 인맥에서마저 상대보다 못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의 그런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고, 객관적으로 검증된 이야기도 아니다보니 어디까지 믿어야 될지 모르겠지만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그쯤 얘기하는 걸 보면 전혀 근거 없다 접어두기도 어려울 것 같다.

그게 객관적으로 검증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들을 수 있고, 때문인지 우리들은 일상사의 한 부분처럼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승진을 위해서는 부인을 앞세워 빚을 내서라도 선물을 사들고 상사 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다는 얘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들어왔고, 성공하고 좋은 배우자 만나 결혼하려면 좋은 대학을 나와야 된다는 말은 어려서부터 귀가 아프도록 들으며 자라왔다.

우리는 안다. 그게 정당하지 못한 일이며 큰 병폐이자 악습이고 그로 인해 이 사회가 좀 먹히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 자신들이 정작의 피해자가 된다는 것을. 그럼에도 사회가 그렇게 흘러가다보니 떠밀려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종종 한탄을 한다. 특히 안타깝고 자괴감에 차마 얼굴 들기가 어려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가 그렇다.

우수한 인재가 국내 대학에서 연구를 하려 했으나 학벌이나 파벌을 앞세우고 출신 학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받아주는 곳이 없어 외국에 나가 큰 성과를 내었다는 소식. 우리나라에서는 문제아 취급만 당하던 학생이 외국에 나가 큰 기량을 발휘했다는 이야기 등등. 종종 들려오는 그런 두뇌유출에 관한 것들을 접하노라면 왠지 부끄러워지고 한탄스러워지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일까?

여느 때도 그렇지만 특히 노벨상 수상자들이 발표될 때면 더욱 그렇다. 올해도 그 명단에는 이웃 나라 일본인 학자들 이름이 올라 있다. 작년에도 그랬고, 그 이전에도 그랬다. 거의 최근에는 거의 매해 수상자를 내다시피 한다. 그리하여 벌써 열 손가락을 두 번이나 다 꼽아간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순수 학문분야에서의 노벨상 수상자는 단 한 명도 없다. 노벨상이 다냐고 하지만 그 말은 그저 자위의 안쓰러움만 더할 뿐이다.

시월도 하순으로 접어들고, 올해도 두 달 남았다. 바람 점점 차가워지는 날인데, 이래저래 실력으로 인정받는 온당한 사회가 그리워진다.

 
전미야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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