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軸의 최초 矗石樓 詩가 없는 아쉬움?
安軸의 최초 矗石樓 詩가 없는 아쉬움?
  • 경남일보
  • 승인 2015.01.0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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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기 (논설고문)
학계 연구에서 촉석루(矗石樓) 찬미를 노래한 시는 본루에 643인이 757제(題)에 862수(首)를 비롯, 함옥헌(涵玉軒), 청심헌(淸心軒) 등 부속누각 4개에 15인이 15제에 23수 등 모두 658인이 772제에 885수가 된다. 촉석루엔 2번, 5번, 7번, 8번째 시의 현판과 편액이 27개가 걸려 있다. 현판·편액이 많은 것은 문장가와 시인묵객들이 다락에 올라 촉석루를 찬미하는 시를 한 수 걸어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촉석루 경내엔 고려 고종 28년(서기 1241년) 촉석루를 최초로 지은 진주목사 김지대(金之岱)가 상주목사 최자(崔滋)에게 보낸 편지에서 진주(진양)를 최초로 예찬한 시가 게시돼 있다.

▶하나 촉석루를 최초로 찬미한 고려 말 우문관대제학(右文館大提學)을 지낸 근재(謹齋) 안축(安軸:1282~1348년)의 진양강수사심양(晉陽江水似?陽:진주남강 물은 심양강과 비슷하네)/금벽루고영수명(金碧樓高映水明:아름다운 누대 높아 물에 비쳐 환하네)/송객추풍지유일(送客秋風知有日:가을바람에 이별하며 세월을 알겠으니)/의주수부비파행(倚舟須賦琵琶行:배 타고 떠나며 비파행을 읊어야 하겠지) 시는 걸려 있지 않다.

▶안축이 시를 최초로 지은 것은 김 목사가 착공한 촉석루를 실제 완공한 목사인 안진(安震)과 같은 순흥(順興)씨에다 친했고, 당시 문장가였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왜 안축의 칠언절구 시가 없는지 아쉬움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다. 이수기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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