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5.02.03 15: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제적 해양경영인 장보고
“조선시대 때 왜구 침탈을 당하게 된 원인을 따져 보면 장보고의 해양강국 정신을 계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창업자 고 이병철 회장은 살아생전에 동아시아의 해상왕 장보고의 선구적인 식견과 능력을 높이 평가했었다고 한다. 장보고가 태어난 정확한 시기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지만 통일 신라 중엽에 지금의 완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완도에서 보내고 젊은 시절인 790년경에 고향 친구인 정년과 함께 당나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태생 당시의 이름은 활을 잘 쏜다는 궁파(弓巴) 또는 궁복(弓福)이었는데 중국에 이주하여 활 궁(弓)자가 들어간 장(張)씨를 성으로 사용하여 장보고(張保皐)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당나라 서주에 주둔하던 무령군에 입대하여 큰 공을 세워 30세에 군사 1천명을 지휘하는 소장 지위에까지 올랐다.

820년대 무령군에서 전역한 뒤, 중국 산둥성 츠산(赤山)을 중심으로 당시 당나라에 거주하던 신라인들을 결집하여 신라인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노력한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 당시 신라유민들이 해적들에게 노예로 잡혀 당나라로 팔려온 것을 보고 분개한 그는 신라로 돌아와 828년 흥덕왕을 알현하고 나서 청해진(淸海鎭) 대사로 임명된다. 1만의 군사를 얻어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서남해안 일대에서 활동하던 해적들을 소탕하였다. 당시 완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남서해안에 창궐하던 해적과 노예상들을 소탕하고 노예무역을 근절시켜 ‘바다를 깨끗이(청해-淸海)’ 하는 해상 근거지인 청해진의 최고 행정관의 소임을 맡게 된 것이다. 김우징이 신무왕에 즉위하여 839년 1월에 감의군사로 임명하였고, 문성왕 시기에는 839년 8월에 진해장군에 임명되어 동아시아의 해상권을 장악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신라로 하여금 일본과 당나라와의 무역을 주도하면서 아라비아·페르시아 등 서아시아 지역과의 교역도 활성화시켜 이른바 해상 실크로드를 완성시킴으로서 우리 역사상 가장 활발한 대외진출과 해상활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전통의 조공무역을 대신한 발전된 민간무역을 경영하는 발상의 전환을 주도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군사적 요충지이면서 산업을 발전시키고 국제교역까지 활성화시키는 대외 해상무역의 전진기지요, 이른바 동북아 허브 항으로서 청해진을 정착시킨 것이다. 그는 국제적 안목을 갖춘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국제무역가이자 해양개척정신의 선구자였던 것이다.

장보고의 생애와 중국 대륙에서의 활약상은 오히려 중국 및 일본 사서와 외국인들의 연구에 의해 더 잘 보존되고 있다. 중국 측 기록으로는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이 지은 ‘번천문집’ 제 6권의 ‘장보고·정년전’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있다고 한다. “사심을 버리고 국가를 위기에서 구한 인물로 진나라에는 기해가 있고, 당나라에는 곽분양과 장보고가 있었다. 누가 동이(東夷)에 인재가 없다고 할 것인가?” 그래서 삼국사기의 김유신 열전편에 “을지문덕의 지략과 장보고의 의용이 있어도 중국의 서적이 아니었던들 기록이 없어져 그 위대함이 알려지지 않을 뻔 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동양의 삼국 중국·일본·한국의 정사에 두루 기록된 국제적 인물은 장보고 말고는 전무후무하다. 장보고는 우리가 세계사에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현대적 의미의 ‘국제해양인’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청해진을 근거로 한 장보고의 세력은 지방의 독자적인 자치 정권이나 다름없었기에 신라 조정과 공존하는 데 문제가 없지 않았다. 결국 장보고의 딸을 문성왕의 차비로 삼기로 했던 약속이 파기된 사건을 계기로 장보고는 841년 11월에 신라 조정에서 파견한 염장이라는 그의 옛 친구에 의해 피살당하고 만다. 그를 따르던 일부 휘하 장병과 주민들은 중국 또는 일본으로 도주하였고 남아 있던 대부분의 주민들은 내륙 평야지 벽골군으로 강제 이주 당한다. 그가 죽고 난 뒤 10년이 지나면서 851년 2월에 청해진은 폐쇄되고 만다. /경상대학교 경영학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