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역학이야기] 말과 소리
[이준의 역학이야기] 말과 소리
  • 경남일보
  • 승인 2015.02.1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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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고, 말 한마디에 뺨 맞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말을 잘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고 또 신중하여야 한다는 말이리라. 그래서인지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쓸데없는 소리’, ‘실없는 말’을 경계하는 격언과 교훈들이 넘쳐난다.

말속에는 말하는 사람의 마음, 뜻, 사랑, 미움, 의미, 정보, 가치, 사상, 계산, 계략, 음모, 이해관계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슬기로운 이들은 대개 말을 잘하고, 또 다른 사람들의 말에 담겨있는 뜻들도 정확하게 재빨리 알아채고 능수능란하게 효과적으로 대처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른바 ‘말귀를 못 알아듣고’,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한다며 사람들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하고 따돌림을 당하기도 한다. 나아가 말을 잘못하여 수없이 혼나고 당하고 손해를 보며 심지어 생명조차 잃는 경우도 있다.

이런 면을 생각할 때 어떤 의미에선 사람의 한 평생이란 말을 잘 하도록 끊임없이 교육받고 지적받고 징계 받는 시행착오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더욱이 현대 사회가 전문화, 격막화(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단절의 칸막이 문화현상), 끼리끼리만 모이는 유형화로 치달으면서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모르거나 무시하고 부정하고 심지어 적으로 규정하여 까부셔 버리려는 살벌한 심리도 간과할 수 없다.

또 다급하게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어야 하는 목적지향적이고 투쟁적인 시대분위기, 지배복종관계의 사회풍토 속에서는 말이 제 구실을 잃어버리고 긴장된 올가미,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수단으로만 전락하게 된다.

이런 풍토 속에서는 뜻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을 싫어하고 경멸하는 스산한 분위기가 나타난다. 뜻 모를 말을 하는 사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의 살아있음 자체를 아름답게 보아 주고 좋아하려는 마음은 전혀 생겨나지 않는다. 이런 사회 속에서는 사람들은 말에 의한 긴장과 스트레스 때문에 자폐증 실어증 대인기피증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뭉크의 ‘절규’처럼 괴기한 사회 천박 사회로 변질되어 버린다.

사실 때로는 ‘헛소리’ ‘실없는 말’ ‘잔소리’ ‘그냥 해보는 소리’를 내지르고 싶고 또 그렇게 하면 속이 후련할 때가 있다. 뜻도 속셈도 내용도 없이 한없이 넓게 번져 나가는 ‘수다’와 ‘지껄임’이 아주 상쾌할 때도 있다.

물론 이 경우 말소리는 말이 아닌 그저 소리일 뿐이다.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말소리 개소리 노래 소리와 같다. 소리는 그자체로 공허한 면도 있지만 또 그자체로 좋기도 하다. 실없는 농담이 더욱 편안한 이유이다.

물론 날카로운 사람, 꾀 많은 사람, 심리학자, 철학자, 사회학자, 역술가 등은 그런 무의미한 소리들 속에서 나름대로의 의미와 내용과 추세를 끄집어내어 해석하기도 하고 대응하기도 하지만 어떤 의미에선 이런 행동들도 역겨운 사족(蛇足)일 수 있다.

인성(印星)이 출중하나 식상(食傷)이 없는 사람은 속으로 아는 것은 많으나 말을 잘하지 못하여 다른 이들의 말을 속으로 비웃지만 스스로 속이 미어터지는 좌절감에 가슴을 친다.

인성이 결여되어 있고 식상이 탁월한 사람은 속에 든 것은 없으나 말보다 소리를 잘하여 다른 이들의 호감을 산다. 인성도 식상도 출중한 사람은 대인관계에서 처신이 훌륭하다.

어떻든 자유롭고 편안하고 폭넓은 사회란 말을 잘하는 사람도 못하는 사람도 소리만 내어 지르는 사람도 침묵하고 있는 사람도 모두 여유롭게 인정하고 안아 들이는 사회일 것이다.

사람의 한평생이란 어떤 의미에선 그저 그런 하릴없이 뜻 없고 뜻 모를 소리의 흔적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저마다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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