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명절교육론
[교단에서]명절교육론
  • 경남일보
  • 승인 2015.02.1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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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준 (진주동명고 교감)
1930년대 향토적인 서정의 세계와 평북 사투리를 시로 형상화하면서 일제강점하의 민중들의 애환과 삶을 전형적으로 그려 낸 시인 백석(白石)의 시에 ‘여우난 곬족’이 있다. 이 시의 후반부는 이러하다.

‘(전략)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 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가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설날 큰집에 모인 친척들의 삶의 모습과 흥겨운 분위기를 묘사하면서 공동체의 평화로운 모습을 낭만적으로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풍속과 명절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명절은 설과 추석이다. 추석이 망자(亡者) 위주의 명절이라면 설은 산자의 명절이다. 추석은 성묘 위주이고, 설은 세배 위주이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명절과 세시풍속에 관련된 많은 기록을 남겼는데, 서울의 풍속만을 기록한 유득공의 경도잡지(京都雜志)란 책의 원일(元日·설날) 항목엔 세장(歲粧)과 세배(歲拜), 세찬(歲饌) 같은 풍속을 소개하는 것을 보면 설날은 산자의 명절이 분명하다.

내일부터 설 연휴가 시작된다. 올해는 2500만명이 이동할 것이라 한다. 구제역·AI 확산방지를 위해 설날 이동을 자제하자는 말들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를 핑계로 올해의 긴 설 연휴기간을 고향 대신 해외여행이나 관광지에서 보내려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간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밥상머리교육과 공동체교육의 출발은 새해 차례상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백석의 시에서 보듯,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또는 장유(長幼)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시공(時空)은 설날 큰집일 것이다. 그래서 자식들을 배려한다고 “바쁜데 뭐 하러 와. 오지 말라”는 말 대신에 “바빠도 고향엔 꼭 다녀가거라”로 바꿔야 할 것이다. 한 해 명절에 자식을 배려하고 나면 평생 명절에는 자식을 못 볼 지도 모른다. 이웃집을 보면 잘 알 것이다. 
문형준 (진주동명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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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심장 2015-02-28 01:15:35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요즘 시류에 꼭 우리들에게 필요한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바쁜데 뭐 하러 와. 오지 말라”는 말 대신에 “바빠도 고향엔 꼭 다녀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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