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순수함이란 사사로운 욕심이나 나쁜 생각이라고는 있을 수 없는 오직 깨끗한 상태라고 봐야 한다. 감정의 순화라는 건 심리 작용을 거쳐서 지성(知性)이 관계함으로 울컥하는 화의 근원도 결국 걸러진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인간의 아름다운 마음으로 고상한 영역에 도달하는 경지가 바로 순수한 감정이 아닐까 한다. 물론 순수한 감정 그 자체는 가치 있고 있는 그대로를 보기만 해도 아름답기만 하다. 우리는 그러한 경지를, 아니 순수한 그런 감정들을 숨기지 않고 나타내 보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간이란 생각하고 판단하기보다는 감정에 좌우되기 쉬우므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건 감성이라는 것보다는 어쩌면 지성이라고 봐야 한다. 누구에게나 지성과 감성이라는 것이 있지만, 그러나 이 두 심성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인간의 지성과 감성 중에서 어느 쪽을 택하기보다 서로 변화를 이룬 한 마음으로 작용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기도 하다.
만약 인간에게 감성적 능력이 좋다면 지성의 능력이 부족하고, 또 지성의 능력이 좋은 사람은 감성적 능력이 떨어진다고 보는 건 옳지 못한 생각이다. 이를테면 감정이 풍부하고, 지성도 뛰어난 사람들도 주변을 둘러보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좋은 사람, 참으로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감정과 지성의 측면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감정이 뛰어나다 하여 힘이 넘치는 건 아니다. 정열에 중요한 건, 강한 힘 아니라 그 근본 바탕이 좋아야 한다.
무릇 정신의 기능이 뛰어나다고 지혜나 견식의 힘이 높은 건 아니다.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얼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삶에 마땅히 지켜야 할 길이나 지식의 힘은 높을수록 좋겠지만, 그릇된 지혜, 즉 질이 낮은 건 별로 바람직한 건 아니다. 근본 바탕이 좋다면 교양 또한 좋고, 됨됨이가 좋지 않으면 지혜나 견식 또한 낮다고 봐야 한다. 사물을 아무렇게 보고 느낀다면 지혜나 견식이 좋다고는 볼 수 없고, 아는 것이 적은데 보고 느끼는 생각 또한 뛰어날 수 없다.
감정과 지성이나 의지도 분산되어 그 어떤 주가 된다고는 보기 어렵다. 다만 마음이나 인격이라 하는 주체가 변화된 얼굴이라 볼 수 있으며, 그 변화된 여려가지 얼굴들을 지성과 의지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정신의 기능과 능력이 조화를 잘 이루기 위해서는 기분이나 생각 따위를 잘 조정(調整)해야 하고, 또한 이성이 제동을 함으로써 더 아름답고 훌륭한 모습이 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인간이란 생각하고 판단하기보다는 감정에 좌우되기 쉬우므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건 감성이라는 것보다는 어쩌면 지성이라고 봐야 한다. 누구에게나 지성과 감성이라는 것이 있지만, 그러나 이 두 심성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인간의 지성과 감성 중에서 어느 쪽을 택하기보다 서로 변화를 이룬 한 마음으로 작용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기도 하다.
만약 인간에게 감성적 능력이 좋다면 지성의 능력이 부족하고, 또 지성의 능력이 좋은 사람은 감성적 능력이 떨어진다고 보는 건 옳지 못한 생각이다. 이를테면 감정이 풍부하고, 지성도 뛰어난 사람들도 주변을 둘러보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좋은 사람, 참으로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감정과 지성의 측면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감정이 뛰어나다 하여 힘이 넘치는 건 아니다. 정열에 중요한 건, 강한 힘 아니라 그 근본 바탕이 좋아야 한다.
감정과 지성이나 의지도 분산되어 그 어떤 주가 된다고는 보기 어렵다. 다만 마음이나 인격이라 하는 주체가 변화된 얼굴이라 볼 수 있으며, 그 변화된 여려가지 얼굴들을 지성과 의지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정신의 기능과 능력이 조화를 잘 이루기 위해서는 기분이나 생각 따위를 잘 조정(調整)해야 하고, 또한 이성이 제동을 함으로써 더 아름답고 훌륭한 모습이 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저작권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