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빛도 없이
이름도, 빛도 없이
  • 이은수
  • 승인 2015.07.1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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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수 기자
이은수기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달 초 창원의 한 장례식장. 복도에 한 젊은 여성이 보낸 화환이 눈에 띄었다. 그 안에는 한통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삼성디스플레이에 근무하는 이지연씨는 작고한 김훈 선생을 추억하며 영정에 글을 바쳤다.

그는 “선생님의 사망소식에 충격을 금할 수 없습니다”며 오열했다. 김훈 선생은 지연씨가 영특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제때 이어가지 못하는 딱한 사정을 듣고 대학등록금을 정기적으로 보냈다. 지연씨는 김훈 선생의 도움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마침내 대기업에 입사하게 됐다고 한다. “감사의 뜻으로 속옷이라도 한 벌 사다 보내 드리려고 했는데….” 지연씨는 목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김훈 선생은 지난 수십 년 간 지연씨뿐만 아니라 형편이 딱한 학생들에게 어김없이 학비를 보탰다. 그는 마산이 전국 7대 도시 전성기를 누릴 때 첫 성형외과를 차려 발군의 실력으로 경남을 평정했다. 당시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복도까지 길게 줄을 서는 일이 다반사였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환자들을 상대하며 많은 돈을 벌었고, 그 돈을 아낌없이 후진양성에 쏟아부었다. 6·25전쟁을 겪고 어렵게 자란 탓에, 다음 세대가 학비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 또한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지역의 소외계층도 가족같이 챙겨 명절마다 무명으로 수십 포의 쌀을 여기저기에 보냈다.

“당신을 위해서는 옷 한벌 제대로 사 입지 않고 검소하게 지내시면서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가족들은 이같이 회고했다. 아들은 김훈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몇 해 전부터 복지재단을 만들어 7억원 가까이 어려운 이웃에게 전했다. ‘삼포세대’라는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올 정도로 많은 젊은이들이 좌절하고 있는 이때, ‘이름도, 빛도 없이’ 묵묵하게 사랑의 전도사 역할을 다한 김훈 선생의 생애는 귀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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