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광복…6·25, 역사 지켜온 역사(驛舍)
일제강점기…광복…6·25, 역사 지켜온 역사(驛舍)
  • 곽동민
  • 승인 2015.08.11 1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진주역 차량정비고
▲ 1925년경 건립된 진주역 차량정비고 모습.



옛 진주역(강남동 소재)내 차량정비고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이 없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역사적 장소다. 광복 70년을 맞아 아픔의 역사 광복의 유산으로 남은 진주역 차량정비고를 찾아봤다.

진주역 차량정비고는 1923년 경전선-경부선 밀양 삼랑진과 호남선 광주 송정리를 잇는 철도 개통과 함께 진주역이 설치될 때인 1925년에 건립됐다.

차량정비고는 당시 진주가 서부경남의 인적, 물적 수송의 중심지였음을 증명하는 건물이다. 특히 일제에 의해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의 곡창지대에서 생산되는 쌀과 면화를 반출하고, 여수항을 통한 일본과의 원활한 연락을 위해 활용됐다.

진주역은 일제강점기 당시 마산과 진주를 잇는 경남선 시종착역이었다. 70년대에는 진주-부산 간 비둘기호 완행열차가 시간당 한대씩 다닐정도로 번성했었고, 마산은 물론 삼천포로 가는 철도역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많은 열차가 드나들었던 만큼 2량의 기차를 수리할 수 있는 차량정비고는 반드시 필요했다.

 

▲ 등록문화재 제202호인 진주역 차량정비고의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명패.


붉은 벽돌을 켜켜이 쌓아올린 높은 지붕의 이 건물은 정면에 기차가 드나들 수 있는 2개의 아치형 출입구가 나 있다.

내부를 들여다 보면 지붕을 떠 받치고 있는 목조구조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시대상에 비춰볼 때 상당히 큰 규모로 추정되며 건축기법 등도 쉽게 확인 할 수 있어 건축적, 철도사적 가치가 크다.

진주역 차량정비고는 일제강점기, 광복, 한국전쟁 등 90여년에 이르는 굴곡진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외벽 곳곳에는 한국전쟁 당시 비행기 기관총 사격을 받은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나 역사적 아픔은 차치하고라도 다소 방치된 듯한 모습은 상당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훼손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이긴 하겠으나 유적지와 어울리지 않는 녹색 철조망, 풀 잘자라는 여름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 외딴 곳에 안내판 하나 없이 혼자 남은 건물을 마주하니 쓸쓸하기만 하다.

곽동민기자·참고=문화재청


 

▲ 진주역 차량정비고 외벽에 남은 한국전쟁 당시 총탄 흔적.
▲ 1925년경 건립된 진주역 차량정비고 모습.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