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상고법원, 그 시대적 과제에 대하여
[특별기고] 상고법원, 그 시대적 과제에 대하여
  • 경남일보
  • 승인 2015.09.30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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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두 (경상대학교 법무학과장)
 
김병두 교수


미국의 홈즈 판사는 1918년 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ㆍ종교의 자유 제한에 관한 불후의 판결을 선고했고, 그 내용은 백여 년 동안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재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이유는 미국의 대법관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1년 이상의 기간을 두고 심혈을 기울인 후 최상의 판결을 내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 대법관이 부담하는 사건 수는 연간 3000건에 다다른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치안’을 마련한 것이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경한 상고법원 설치안이란 화두가 법조계를 뒤흔들고 있다. 대법원은(삭제) 상고사건 중 대부분을 신설될 상고법원에서 처리하고 중요한 공익이 관련되거나 법령 해석의 통일이 필요한 사건만을 대법원에서 처리하겠다는 것이 법률안의 취지이다. 그 법률안이 국회 법사위에 계류되면서 상고법원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법안에 대한 찬반 이유가 팽배해 한 치도 물러섬이 없어 논의가 진행될수록 유관기관 사이의 파워게임으로 전락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즈음에 상고법원 설치의 진정한 의의를 곱씹어보며 그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법의식을 살펴보면 의무보다는 권리를 우선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민사분쟁 해결만 보더라도 사법부에 대한 의존도가 유난히 높고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가 대법원에 호소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여파로 상고사건의 상당수가 심리 없이 기각되면서 상고심의 구조적인 재편 필요함이 절실해졌다.

국민의 의식구조 자체를 바꿀 수 없는 실정이라면, 차라리 새로운 상고법원을 마련해 실질적인 3심 재판을 보장하는 것이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첩경인 것이다. 그것이 법해석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규정된 3심제를 유지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상고법원이 설치되면 재판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난 대법관은 시간을 두고 사안을 다루게 된다. 한결 자유로워진 대법관은 정치한 법리를 구축하는 일에 전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대법관은 법리를 창출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대법관에게 사회가 발전함에 부응하는 법리를 생성할 수 있도록 그 시간과 여유를 주어야 한다.

예컨대 우리는 다문화가정,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남북한 통일문제 등 많은 법률문제를 접할 것이고 상고법원의 설치는 그러한 문제를 미리 대비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다원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일반적인 법률은 그 실효성을 유지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 끊임없는 법률의 개정작업이 진행되더라도 법률의 흠결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법률의 흠결 등에 대하여 대법관은 정교한 이론을 수립해 그 흠결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법률문화의 지평을 높이는 것이며 대법원이 법률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자임하게 될 것이다. 상고법원 설치의 정당성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나라에도 100년 동안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홈즈 같은 판사가 하루빨리 배출되길 희망한다. 그러한 판사가 배양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은 이 시대의, 그리고 우리들의 숙제이자 의무이다.

김병두 (경상대학교 법무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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