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망진산의 유래
[교단에서] 망진산의 유래
  • 경남일보
  • 승인 2015.11.08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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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 (명신고등학교장)
기적소리 반사벽이 되었던 산, 남강과 벼랑이 만나는 머리카락 폭의 틈에 레일을 깔고 그 위로 긴 세월을 달렸던 열차는 여정을 옮겼고, 페달을 밟으며 속삭이는 레일바이크 연인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정상에 봉수대가 있고, 개양에서 능선을 내어주어 시민이 즐겨 찾는 산, 망진산이다.

산은 말이 없건만 사람들은 특징 또는 기원을 담아 이름을 지었는데, 진주 인근에 비봉산, 집현산, 월아산, 망진산 등이 있다. 어떻게 망진산으로 됐을까.

망진산은 望晉山, 望晋山, 網鎭山 등으로 표기되고 있다. 望晉山 및 望晋山은 어디를 바라보는 산인가. 진주를 바라보는 형상의 산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진주는 전국적으로 유일한 지명인데 晉州 또는 晋州로 기록되고 있다. 음은 같아도 모양이 일치하지 않아 다른 글자로 볼 수 있다. ‘에나’ 진주는 어느 것인가. 중국 역사에 둘 이상의 진나라가 존재해 晉, 晋으로 분류한다. 망진산은 어느 진주로 향한다는 말인가.

진주 지형에 관해 설명하기를, 시내와 산의 경치가 영남 제일이요, 큰 산과 큰 강이 있어 인물이 많고 물산이 영남 여러 주의 절반이며 비봉산은 북쪽에서 멈춰 있고 망진산은 남쪽에서 공손히 절한다. 이 두 산 사이에 남강이 흐르는데 동서의 여러 산이 구불구불 사방을 둘러섰다고 했다.

진주의 진산은 북쪽에서 시내를 에워싸고 동서로 크게 날개를 펼쳐 봉 또는 황(봉황)이 날아오르는 형상의 비봉산이다. 지혜로운 이 지역 사람들은 이름으로써 봉황을 머물게 하려 했다. 대롱·소롱이라는 절은 봉황을 크고 작은 새 장(籠)에 가두어 머물게 하고자 했고, 까지를 보면 날지 못하기에 들판을 작평(鵲坪)으로 시원하게 물놀이 하며 쉴 수 있게 봉지(鳳池)를 만들었다. 그리고 봉명루(鳳鳴樓)를 세웠고, 마을 이름을 죽동(竹洞)으로 했으며 남강변에 대숲을 조성했다.

봉황은 대나무의 열매를 먹고 오동나무에 깃을 틀어, 상봉촌에 오동나무와 대나무를 심었고 오죽광장으로 이어 오고 있다.

망진산은 비봉산을 향하는 형상이라 그물을 보면 봉황이 머물 것으로 예견해 ‘그물 친다’는 網鎭의 산이다. 진주는 예나 지금이나 인재를 아끼고 키우는 마음이 충만한 도시이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라 망진산의 의미를 널리 알리고 애용해야겠다.

 
안명영 (명신고등학교장) 교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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