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진주에서 가을을 누리다
[여성칼럼] 진주에서 가을을 누리다
  • 경남일보
  • 승인 2015.11.1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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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순 (전 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가을이 깊어졌다. 10월 하순경까지만 해도 “10월인데도 낮에는 너무 더워” 라는 말을 되뇌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 보니 가을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해마다 조금씩 짧아져 가는 가을이 아쉬워, 가을단풍을 보겠다고 산속의 절을 찾아가는 나들이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가을의 공기를 조금 느꼈을 뿐 단풍은 짙지가 않아서 아쉬움만 안고 돌아왔다.

그런데 내 삶의 거처인 진주의 거리가 진정한 가을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도시를 가로지르고 흐르는 남강의 강변길이 아름답다. 빨강, 노랑, 갈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는 가로수의 모습이 가을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차를 타고 지나치면서, 그리고 걸어가면서 마주치는 그 길들은 매번 “아!” 하는 탄성을 자아낸다.

하대동에서, 신안동에서, 옥봉동에서, 망경동 등에서 만나는 가을이 더 없이 아름답다. 진주의 어느 곳에서나 잠깐 멈추어 서서 노랗게, 빨갛게, 또는 주황색으로, 갈색으로 물든 나뭇잎들과 그 나뭇잎들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풍경을 바라보라. 그러면 가을이 선물하는 아늑함과 고즈넉함 그리고 아련함에 시나브로 젖어들게 될 것이다.

진주에서 살면서 늘 감사했던 것이 있다. 그 하나는 진주가 천년고도라서 그런지 안정되어 있는, 고즈넉한 도시라는 점이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넋이 나갈 만큼 빠른 속도에 치어서 사는 것과는 다른, 속도가 빠르지 않고 소란스럽지 않는 점이 좋았다. 또 하나 감사했던 점은 어느 동네에 살든 약 10분만 차를 타고 나가면 자연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 진주의 가을을 보면서 자연과 가까운 점이 진주의 장점 중에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주가 자연과 가까운 도시가 아니라 자연 속의 도시임을, 일상 속에서 만나는 거리거리가 자연임을 알게 된 것이다. 외곽에서 진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고층아파트 단지들이 자연에 침잠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기는 하지만, 진주는 계절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고, 우리를 자연의 품속으로 인도하는 안내 표식을 구석구석 숨겨놓고 있는, 자연 속의 도시였던 것이다. 우리가 잠시 숨을 돌려서 그 표식을 찾아내어 기쁘게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을 누리라고.

진주의 가을을 느끼노라면 해마다 짧아져만 가는 가을이 무척 아쉬워진다. 물론 진주는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또 겨울은 겨울대로 진주만의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줄 터이지만, 이제 찬바람이 불면 이 가을 진주가 보여주고 있는 아름다운 색채의 향연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 안타깝다. 그래서 우리 서민으로서는 일상이 바쁘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녹녹치 않은 세월이긴 하지만, 진주가 선물한 가을을 충분히 누리면서 생활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된다. 교과서 국정화니, 경상남도와 교육청의 무상급식 논쟁이니, 유등축제 유료화 공방이니 하는 문제들이 우리 삶에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그리고 일상을 살아내려면 잠시 짬을 내어 하늘 한 번 쳐다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가을을 누릴 조금의 시간을 내어보았으면 좋겠다. 그 잠깐의 시간이 정치적인 사건과 논쟁, 일상의 분주함을 벗어날 기회와 그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짧지만 아름다운 진주의 가을을 충분히 누리시길….



강문순 (전 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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