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3 (26)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3 (26)
  • 경남일보
  • 승인 2015.11.1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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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3 (26)


요즘 들어 사장은 부쩍 여자들의 여성스러움을 찬양하며 양지의 심기를 불편케 했다. 비록 외부 손님과의 회동을 빌미로 업무의 효율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라 얼버무리기는 해도 사생활에 대한 전에 없던 간여는 양지의 사기와 자존심에 적잖은 생채기를 내고 있다.

그 따위가 무슨 상관이랴 크게 생각해서 내쳐 버릴 수도 있지만 양지는 자의식은 거기서 곤두선다. 자신이 사안을 선별해서 떨쳐내면 몰라도 누구로 인하여 자신의 뜻이 수정되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 비서실의 미스 김이 병훈과의 관계를 염두에 둔 일차적인 교두보로 용돈 정도의 보수에 만족하며 비서실 근무를 자청했다는 얘기는 추 여사의 입을 통해서 몇 번이나 인지를 받았다. 사장과의 인과관계나 회사에 끼친 공을 봐서라도 양지는 자신이 미스 김 정도의 상대가 될 리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추 여사가 전해주는 여러 가지 정황이나 회사 경영과 사생활을 구분하며 변해가는 사장의 심리는 양지에게다 아들을 선택하는 기득권까지 부여할 것 같지 않았다.

머잖아 병훈이든 현태든 양자택일을 해야 하며 이 가을이 자신의 일차적인 생의 매듭을 짓는 중요한 시기가 되리라는 예감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남으로 인한 불상사는 다시 한 번 그녀의 일상을 복잡한 관계 속에다 끌어들이고 말았다. 아버지의 일은 어차피 양지 자신의 소관이 아니지만 정남이 딸의 장래까지 나 몰라라 하고는 개인적인 어떤 진척도 기대할 수가 없었다.

착잡하게 가라앉은 양지의 시야 속으로 반병쯤 남은 소주병이 들어왔다. 딸의 눈치를 보며 아버지가 마시다 남긴 거였다. 아버지. 양지는 한심한 음성으로 한숨처럼 그 이름을 외어보다가 무릎걸음으로 소주병을 향하여 기어갔다. 아버지가 얻었다는 핏덩이에 생각이 미치자 숨결이 거칠고 불안정해졌다. 막 소주병을 기울여 입에다 대려는데 밖에서 기척이 났다.

“불이 켜진 것 보이 인제 들어 왔나보네.”

문이 열리고 특징 없이 넙데데한 주인댁의 얼굴이 나타났다. 양지는 찔끔한 동작으로 소주병을 뒤로 숨겼다. 주인여자의 판다곰처럼 멍든 눈자위로 시선이 먼저 갔다. 아직도 부부싸움이 화해되지 않았으니 오늘도 여기서 신세를 지자는 건가.

심성은 고운 양반인데 술이 웬수지 뭐야. 이제 그런 변명은 미덕이 아니다. 제발 자존심 좀 차리라고 세상 모든 여자들의 이름으로 주인댁을 성토하고 싶었다. 미치광이처럼 날뛴 게 언제냐는 듯 멀쩡한 모습으로 미안한 감도 없이 어른 노릇 남자 노릇을 다하려드는 폭군에게 죄 지은 하녀처럼 굽실거리는 주인댁의 짓거리는 비록 남의 일일망정 정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꼬락서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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