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객원논설위원)
방부재 미모는 변하지 않는 미모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 존재 모든 것은 변하는 것이 이치다. 인간이란 존재의 삶의 과정에 변화의 가장 극적인 최고 정점은 죽음이다. 사람들은 그 죽음에 대해 주로 죽음의 현상학적인 간접적 체험을 중심으로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
▶죽음이 철학과 삶과 문학과 예술의 가장 깊은 신비적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인간 최대의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누구나 홀로 맞이해야 하는 실존적 사건이며, 인연이 됐던 모든 성취물에 대한 이별이며 해체라는 의미상실이 있다. 죽음의 현실적 대비가 삶이다. 그런데 삶의 여정에 어느 누구도 삶의 시간을 한줌 부끄러움 없이 살았다고 자신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들은 현실 삶의 어떤 것은 영원하거나 오래 지속되기를 원한다. 소설가 박범신은 ‘작가생활 42년, 뒤돌아보니 문학은 내 영혼의 방부재였던 것 같아’라고 토로하면서 ‘지식인 사회는 관념을 숭상하는데, 작가는 관념을 내세울 게 아니라 감각적 묘사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관념을 떠올리게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결국 이러한 논의는 삶의 방부재 내용물로 귀착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유한 삶의 방부재를 가지고 있다. 고뇌할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한 저항의 문제를 누구나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방부재로서 기능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이는 삼라만상에 대한 개인적 구체적 접목에서 가능한 일이다. 이재현 객원논설위원
▶죽음이 철학과 삶과 문학과 예술의 가장 깊은 신비적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인간 최대의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누구나 홀로 맞이해야 하는 실존적 사건이며, 인연이 됐던 모든 성취물에 대한 이별이며 해체라는 의미상실이 있다. 죽음의 현실적 대비가 삶이다. 그런데 삶의 여정에 어느 누구도 삶의 시간을 한줌 부끄러움 없이 살았다고 자신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들은 현실 삶의 어떤 것은 영원하거나 오래 지속되기를 원한다. 소설가 박범신은 ‘작가생활 42년, 뒤돌아보니 문학은 내 영혼의 방부재였던 것 같아’라고 토로하면서 ‘지식인 사회는 관념을 숭상하는데, 작가는 관념을 내세울 게 아니라 감각적 묘사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관념을 떠올리게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결국 이러한 논의는 삶의 방부재 내용물로 귀착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유한 삶의 방부재를 가지고 있다. 고뇌할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한 저항의 문제를 누구나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방부재로서 기능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이는 삼라만상에 대한 개인적 구체적 접목에서 가능한 일이다. 이재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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