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3 (2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3 (27)
  • 경남일보
  • 승인 2015.11.1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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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3 (27)

무슨 일로? 눈으로 물으며 어서 들어오라는 말을 아끼고 있는데,

“전화가 아까부터 여러 번 자꾸 왔어. 있는 데두 안 바꿔 주는 것도 아닌 데 어찌나 역정을 내는 지, 나 원 참 별 희얀한 사람도 다 보겠어. 교환수 대놓은 것도 아니면서 무슨 이런 전화가 다 있느냐고 아저씨가 얼마나 성질을 내는지, 어데 가지 말고 딱 붙어 있다가 전화 받으라고 난리가 났어”

주인여자는 벌써 남편을 용서한 모양이었다. 여자의 말을 듣던 양지는 쓰러져 버리고 싶은 피로감을 일시에 느끼며 더운 김을 불어냈다.

전화는 다시 어떤 내용으로 내 생활을 흔들며 다가들고 있는가. 난제, 난제. 자신을 위하는 일이건 힐책하는 일이건 정말 타의에 의해서 자신이 휘둘리는 일은 이제 그만 당하고 싶었다. 전화를 건 상대방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묻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사는 사람이 한 집에 많으니까, 방마다 제 전화 따로 놓고 쓰던가, 우리 입장도 이해해 줘요. 그럼……. 아이고, 또 오네”

주인댁이 등을 보이는 순간 기다리고 있었던 듯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양지의 방까지 긴 꼬리를 달고 울려왔다. 부리나케 내달은 주인댁이 미처 마당을 건너가기도 전에 거칠게 열리는 문소리와 함께 오십대 중반인 주인남자의 술기어린 볼멘 음성이 건너왔다.

“아랫방 아가씨 전화 받으라고 해!”

양지는 주인남자의 거친 성깔이 또 터져 나오기 전에 거미줄처럼 금간 좁은 시멘트 마당을 빠르게 가로질러 갔다. 수돗가에 놓여있던 비누통이 발길에 밟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전기세는 야무지게 받아 챙기면서 마루에 불이라도 좀 켜놓지. 내일 아침이면 깨어진 비누통 하나 때문에 수돗가에는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리라.

아예 불을 꺼놓고 더듬듯이 발을 미는 침침한 마룻바닥에 줄을 길게 늘인 전화기가 벌써 나와 있었다. 주인댁이 흘금 양지를 돌아보며 어둠이 넘실거리는 마루를 건너 부엌으로 내려갔다.

“너 집에서 무슨 말 들은 거지?”

수화기를 들자 명자언니의 화가 치밀어서 곧 폭발할 듯 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무, 무슨……. 그게 무슨 뜻이야?”

“너 그럼 왜 자꾸 전화 안 받고 빼는 거야. 이제 보니 너 참 맹랑하다. 까짓 것 출세했다고 다른 사람 말은 이제 귀에 들어오지도 않나베. 하긴 너네 식구들 그런 도도한 거 뭐 있지. 그렇지만 이제 나도 아니야. 옛날 생각하다간 큰 코 다치지. 그럼, 그렇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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