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 미안해요, 아버지
[경일칼럼] 미안해요, 아버지
  • 경남일보
  • 승인 2015.11.2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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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숙자 (시인)
우리 삶의 최고의 가치는 가족에 있다고 본다. 가족은 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 짐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가족이다. 부모를 10년 이상 모시면 상속세를 감면해주는 효자 유산법이라는 제도까지 생길 지경이다. 무주택 자녀가 부모재산 15억짜리 집을 상속세 한 푼 안내는 효과와 같다는 것이다. 애초에 한 몸이었던 세상의 자식들에게 이래도 부모를 모시지 않겠느냐는 회초리 같은 법인 셈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세상을 점점 비탄한다. 10대에는 꿈이 없고, 20대에는 직장이 없고, 30대에는 집이 없고, 40대에는 내가 없고, 50대에는 일이 없고, 60대에는 낙이 없다고 하는 세상이다. 자수성가할 기회는 갈수록 힘들어지고 부모 재산에 따라 자식의 경제적 지위가 결정되어진다는 수저계급론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고 현실화돼가는 추세이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야 성공하기도 쉽고 부를 축적하고 살지만 은수저, 동수저를 지나 흙수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자립하기도 어렵고 가난이 대물림되는 새로운 계급사회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사회 성장률이 저조할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는 결과를 가져오고, 결국 자신의 힘으로 홀로서기를 못하고 부모의 힘을 빌려 이룩한 부의 불평등은 우리사회가 바람직한 능력주의 사회로 나아가지 못하는 걸림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자식이 성인이 되면 부모가 경제적으로 일일이 도와줄 수는 없는 일이고, 그 경제적 책임을 부모가 대신 져주는 것이 길게 보면 그게 절대 자식인생에 득이 되는 것이 아니다. 노후가 어렵더라도 자식을 우선 지원하겠다는 부모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사랑이 과하면 상처가 되는 법. 가장 헌신적인 부모가 가장 불편한 부모가 되고 말았다. 잘못되면 모든 게 다 상처를 준 부모 탓이라고 여기고 부족한 건 채워져야 하고 못해주면 못난 부모 같은 자격지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식이든 부모든 기대하지 않고 살아야 덜 아프고 상처도 덜 받는다.

세상의 부모에게 자식은 또 다른 우주인 것을. 자식을 넓고 크게 붙잡아주는 그물망 같은 사랑을 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랑이다. 거리를 두고 지켜봐야 하고 서툴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기다려줘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설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내는 물리적인 사랑이 온통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의 눈을 바꿔야 한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 헤아린다면 오히려 진정한 것은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놓치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고 사람구실을 하게 만들어 놓았지만 열 자식은 한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는 말이 남의 말이 아니고 말았다. 그 아버지는 지금 요양원에 계신다. 뵙고 올 때마다 죄송해서 가슴에 대못 하나 박힌다. 붉은 가을이 지나가자 시간은 어김없이 마지막 잎새를 향해 슬금슬금 다가간다. 결국 인생의 가을걷이는 혼자 하는 거였구나. 생기가 다한 건너가는 시간을 본다는 것은 등이 시리다. 어느 영혼의 뒤늦은 참회인 눈물같은 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저녁이 저물어간다. 저무는 것은 그저 쓸쓸하다.

황숙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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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혜 2016-01-01 10:20:49
세상은 참 많이도 바뀌었는데 자녀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은 끝낼줄 모르는 현실이 안타깝다. 뒤늦은 참회의 눈물을 쏟아 내기 전에 타산지석을 삼아 자녀도 독립하고 자녀에게 불편한 부모가 되지 말아야된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깊은 생각을 하게하는 황시인님의 좋은 글을 잘 읽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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