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4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42)
  • 경남일보
  • 승인 2015.12.0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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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42)


“야, 최 양지. 제발 전화 좀 놓고 살아라”

평소의 그답게 거침없는 말투로 현태가 쏘아 붙였다. 양지가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손수건을 꺼내 땀을 훔치는 폼이 어지간히 급한 걸음으로 언덕길을 재우쳐 올라 왔음을 알겠다.

“회사에는 안 나왔다고 하지, 주인집에는 아무리 벨이 울려도 전화 받는 사람이 없지, 사람 환장 하겠더라니까”

양지는 꼬꼬장한 눈으로 현태를 노려보았다. 이제 그를 피하려면 어디로 가야할까, 순간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자 벌컥 울화가 치밀었다.

“정말 이러지 좀 마!”

“따지는 건 나중하고 우선 좀 들어가자. 나도 그렇게 일없는 사람 아니니까”

“안 돼!”

남자란 다 이렇게 억지스러운 건가. 한 십 년은 같이 산 듯한 이 유들유들함까지. 양지는 미처 뭐라고 말할 사이도 없이 내뱉으며 방으로 들어서려는 현태를 퉁명하게 밀어냈다.

“제에길. 꼭 무슨 치한 취급이군”

현태는 양지의 뜻을 간파하고 씨익 웃었다.

“무슨 일인데?”

“궁금하면 따라 나와”

짧게 말한 현태는 돌아서서 오던 길로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양지는 곤혹스럽다. 현태가 지어놓고 기다릴 일이 대충 짐작이 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호락호락 따라 갈 사정이 아니었다. 그녀는 시니컬한 웃음을 흘리며 줄레줄레 앞서나가는 현태를 바라보았다. 어디 다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현태의 부모. 네가 끈다고 다소곳이 선 보여서 시집 갈 량이면 여태 이러고 있지는 않았을 거다, 이 맹추야.

”괜히 헛수고 하지 말고 고생하신 시골 어른들 맛있는 거나 대접해서 모시고 가“

”뭐어야?“

저만큼 아래서 휙 돌아보며 현태가 소리를 질렀다.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현태가 다시 양지를 향해 올라왔다. 사뭇 정색을 하고 바라보는 눈길이 잘못 짚었음을 시인하지 않으면 안 되게 날카로웠다. 분위기는 좀 전하고 아연 달라져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후욱 끼쳤다.

”그럼 묻겠는데, 너 정남이 딸 저대로 외국으로 보낼 거야?“

쌀쌀하게 물은 현태는 양지가 놀라거나 말거나 따라오거나 말거나 내버려두고 휭하니 아까보다 빠른 걸음으로 아랫길을 향했다. 정남이. 아직도 서성거리고 있는 그녀의 그림자가 이제 현태와의 사이에서 어떤 작용을 할 것인가. 양지의 눈앞에는 그 오래된 동네 특유의 으슥하고 완고해 보이던 풍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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