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4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44)
  • 경남일보
  • 승인 2015.12.09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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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44)


남자가 나무라면 여자는 잎사귀며 꽃이며 열매이기도 하다. 남자의 줄기는 굳세어야하며 동시에 우람하기도 해야 한다. 누군가의 수필에서 읽었던 구절이었다. 그런 이상적인 나무에 현태는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양지는 현태의 청혼을 친한 친구 사이니까 주고받을 수 있는 농담 정도 이상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또 하나의 그녀가 깊은 의식의 내부에서 그녀의 행동을 관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그녀는 또 하나의 자신을 배반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저 남자의 넓은 등 뒤에 낮게 몸을 숨기고 이마를 때리는 이 찬바람을 피하고 싶다.

큰길가의 찻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현태가 불씨를 떨군 꽁초를 하수구에다 던져 넣고 침을 뱉었다.

찻집으로 들어가 벽 쪽에 자리를 잡은 현태가 뜻밖의 소리를 했다.

“나 오늘 창규 이 자식 집에 갔다 왔는데-”

들어 올리던 물 컵을 어중간에다 멈추며 양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어서 컵과 탁자가 마주치는 소리를 냈다.

“현태 씨, 정말 우릴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지 마”

“그럼 너 그 애 어쩔래? 수찬이가 주선하는 대로 외국 보낼래?”

서슬 퍼렇던 촉수를 누그러뜨리고 양지는 약간 고개를 숙였다.

“사람의 일이란 순서가 있고 한계가 있는 거야”

“그래서 뭐래?”

이번에는 양지가 바투 물었고 난감한 기색을 어쩌지 못한 채 현태가 물 컵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마시지는 않고 입술만 대다가 화딱지 난다는 표정과 함께 컵을 다시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달리 조치를 취해야 될 것 같다. 세상에 어쩌면 인륜도덕이야 땅에 떨어진지 오래됐다 치고라도 글쎄, 제 새끼가 좋으면 남의 자식도 제 새끼가 좋아한 만큼은 생각해 줘야 되는 거 아냐? 비용 뜯으러 온 것만 알고 펄펄 뛰면서, 나중에는 어떻게 연락이 닿았는지 이놈의 지집애, 딸년들까지 몰려와서 미친개 몰려 들 듯이 왕왕 달려들더라니까. 에이 악귀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이 지 서방한테는 여권신장을 먼저 부르짖는 같잖은 것들이라니까. 치사하게 문제도 아무것도 아냐. 밭일을 잘못한다. 밥도 제대로 못한다. 시아버지 와이샤쓰 한 장을 제대로 못 다리더라, 에이 쪼잔한 것들, 대체 그딴 것들이 뭔데 한 사람의 인생을 그렇게 거덜 내 버리느냔 말이야”

양지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여자가 아닌 남자의 입으로 들으니 그런 것들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게 자디잔 일들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많은 시어머니며 시누이, 며느리들은 그런 자잘하고 하찮은 일에 서로를 얽어 매려하고 얽매이기 싫다고 서로 간에 흠집을 내며 트잡이를 한다.

“아무리 핏덩이지만 그래도 인간인데 말이야”

날라져 온 차를 마시다말고 치받는 억하심정을 가누지 못한 현태가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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