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48)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48)
  • 경남일보
  • 승인 2015.12.0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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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48)

 양지의 연상은 현기증 속에서도 그 옛날의 기억들을 유추해 냈다.

 지겟가지에 목을 매달아 죽인 뒤 내장을 긁어내고 핏물을 씻기 위해 개울가에 부닥뜨려 놓은 개.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복날 개 패듯이’라는 말이 만들어지도록 두들겨 패고 또 맛의 고소함을 더하기 위해 털을 그을은, 숯덩이처럼 시커먼 개의 홀쭉한 배와 앙상한 갈빗대. 중복 무렵의 냇가에서 흔히 보았던 끔찍하고 흉한 풍경.

 웃통을 벌겋게 벗어부친 남자들이 날고기를 잘라 먹어가며 날리던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의 야만적인 웃음. 그리고 또 이와 흡사했던 참상. 뻐꾸기가 몹시 우는 산골이었다.

 담녹색의 두터운 수풀 속 어디에선가, 계집 죽고 자식 죽고…. 뻐꾸기는 다만 구구하고 울뿐인데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넋두리 속에 말라붙은 핏자국을 팥고물처럼 눌러 쓴 채 누워있던 언니. 한 쪽 발에는 미처 신지도 벗지도 못한 빨간 나일론 양말이 꿰어있는 채 하늘과 땅 사이에 숨어있던 죽음의 공간으로 속절없이 목숨은 흘려버리고 천만마디의 앙졸거림보다 더 간악한 침묵으로 항거하던 언니….

 정남이도 언니도….

 양지는 가까스로 눈을 흡뜬 채 고개를 흔들어 파노라마 현상의 그림자들을 털어냈다. 제가 보인 동작이 무안해서 링거튜브를 만지면서 살펴보는데 톡, 그제야 기포 사이로 작은 물방울이 하나 낙하했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사람 모습 많이 회복했구먼, 어때 정남이 맞지?”

 양지의 옆구리를 집적하며 낮은 소리로 현태가 말을 걸었다. 양지의 눈길은 녹색 담요로 가려진 불룩한 배 부분에 꽂힌 채 움직이지를 않았다. 그 지경에도 용케 태아는 자랐다. 그것도 어미라고 의지하며 악착스럽게 매달려있는 생명의 근성에 비애와 울화가 동시에 치밀어 올랐다.

 “쟨 나와 아무 상관없어. 나한테 저런 동생은 없어. 우리 정남이는 저러지 않아”

 양지는 냉정하게 현태의 말을 부인했다. 할 수만 있다면 꽝 소리 나게 병실 문을 닫고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야, 최 양지. 너 왜 그래. 기분은 이해 못할 바 아니다만”

 벨 듯이 날카로운 양지의 눈이 현태를 노려보며 바로 꽂혔다. 순간적으로 손이 뻗어 나갔다.

 “네가 뭔데, 네가 뭔데 날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거야”

 멱살을 향해 기어오르는 양지의 두 손을 걷어잡으며 현태의 몸이 기우뚱했다.

 “진정해, 인마. 정말 너답지 않아. 사람이 저 모양이 되어있는데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비틀거리며 양지의 두 손을 모아 쥐고 현태가 나무라자 곁에 있던 현태의 친구도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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