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4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49)
  • 경남일보
  • 승인 2015.12.0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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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49)

“그럼요. 저 이래봬도 사회의 밑바닥 사람들 때문에 먹고사는 사람입니다. 양지 씨의 체면, 아니 표현에 실례가 되었다면 혈육의 정이나 보살핌을 배신한 소의는 괘씸하지만 어쩝니까. 본인은 또 본인 나름대로의 고충이 얼마나 극심했겠습니까. 이제 이 친구도 확실히 알았고 저도 있으니까 앞으로는 잘 되게 해야겠지요”

그때 쇼핑백을 든 여자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얼른 다가간 문 주사 앞에서 여자는 백 속의 내용물을 꺼내 보였다. 큼직한 의복들인데 아마 정남에게 입힐 것인 듯했다.

“우리 이주사가 옷을 갈아입히겠다니까 우린 나가지”

이 주사로 지칭된 보건소 여직원은 정남이 쪽으로 다가가 덥혀있는 담요를 젖히고 부대자루처럼 누워있는 정남을 일으켰다. 신경안정제를 놓았기 때문에 많이 점잖아 진 거야. 정남이 좀 전까지 어땠는지 현태도 양지도 같이 듣고 자신들의 고충을 알아달라는 듯이 묻지도 않은 점을 문주사가 일깨워 주었다. 위생복을 입은 중씰한 여인이 데운 물과 타월을 들고 정남이 옆으로 갔다. 어려운 일 난처한 일들을 얼마나 쳐냈는지 양지가 보이는 감정의 노출 따위는 아랑곳없이 담담하게 일상적인 그들의 표정. 양지는 그들에게 정남을 맡겨놓고 허적허적 병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복도의 긴 나무의자에 양지는 앉고 현태와 문 주사는 앞에 서서 양지를 내려다본다. 담배를 꺼내서 현태와 나누어 불을 붙인 문주사가 싱글싱글 웃으며 양지 옆에 걸터앉았다.

“두 사람 얘기를 그 동안 쭉 들어서 알고 있는데 이번 일로 단단히 덜미를 묶인 겁니다. 이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고 두 사람을 한 동아줄로 꽁꽁 묶어 놓기 위한 절대적인 필연입니다. 이 점 최 양지 씨는 꼭 명심해야 됩니다. 수속을 끝내고 행려자 수용소로 보내 버렸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이 친구 말을 듣는 순간 아찔하더라니 까요. 어찌 불러 댄 듯이 이 친구가 나를 만나러 왔을까, 참 신기한 일 아닙니까”

코미디언처럼 과장스러운 제스처까지 동원해 가며 지난 일을 설명하는 문 주사를 바라보니 이래서 소위 백이며 연줄이라는 것이 중시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는 했다. 정남을 찾기 위해 여러 기관을 드나들었지만 정말 고충을 이해하며 성의를 다해 말이라도 상냥하게 해주는 사람은 드물었다. 문 주사 역시 누구에게나 이렇게 친절하며 적극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밀고 당기는 현태와의 관계 때문에 더욱 성의를 다하는 것이 그의 언행으로 드러나 보였다.

“다행히 용태도 양호한 편이니까 섭생 잘 시키고 안정 된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신경증세도 곧 호전 될 거랍니다. 그런 다행이 없습니다”

양지는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수치심을 무릅쓰고 정남이 스스로 언니 가까운 곳으로 찾아왔다가 발견된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동그래진 눈으로 반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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