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5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51)
  • 경남일보
  • 승인 2015.12.0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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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51)

“최강 양지 씨 심정도 어느 정도는 이해합니다만 저는 이 친구 말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부모님이 서운해 하실 건 아주 당연하지요. 저도 나이 드신 부모님이 계시지만 자식한테 자격지심을 갖고 있는 부모일수록 서러움은 더 끼는 법이구요”

“두 분 남자들은 왜 한 가지 밖에 몰라요? 어른들이 아시면 간병인이 할 수 있는 일 외에 무슨 도움이 더 된다고 그러세요?”

양지의 반박에 현태가 다시 이의를 걸고 나섰다.

“야, 사려 깊은 건 너만 아니야. 아무려면 육친의 손길과 간병인의 손길이 같겠니. 문제는 네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인데, 그 따위는 자존심도 아니야. 바람 빠진 허세야 인마. 넌 그 때문에 너 자신을 망치고 있다고 내가 늘 말했지?”

얼굴이 상기되고 목청까지 높아지는 현태를 보다 못해 문수찬이 가로막아 서서 서로의 시선이 맞부딪치는 것을 차단 시켰다.

“잘해보자고 하면서 너는 왜 싸울려고 그러냐?”

“나 원 참, 생각해 보면 나도 참 한심한 놈은 한심한 놈이다”

친구의 말에 깨달음을 얻은 듯 자조적인 음성으로 현태가 씹어 뱉었다. 예삿일로도 부딪치면 입싸움으로 번지고 마는 게 당연한 귀결처럼 둘 사이는 되어있었다.

양지는 이미 각오하고 있는 일이어서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다. 사실 현태의 말은 모두 옳은 말이다. 정남의 흔적이 묘연해진 이후 혼자서 많은 고민을 했다. 한 사람의 생각보다는 두 사람 세 사람의 생각 속에 두 가지 세 가지의 묘안이 창출 될 확률도 높다. 행동도 그와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러나 감쪽같이 처리하려던 정남의 흠집은 아는 사람의 숫자만큼 그들의 뇌리에서 기정사실화 되어버린다. 수선만 피우고 근심 걱정의 부피만 배가될 뿐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양지가 내린 결론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병상을 지킬 필요가 있으면 간병인을 구하면 될 것이다. 어머니는 귀애하는 막내둥이마저 겪게 된 불행을 정말 보고 싶지 않을 것이었다.

“문 주사님”

복도 모퉁이를 돌아 여직원이 헐레벌떡 나타났다. 세 사람 모두 우뚝우뚝 섰다.

“환자가 이상해요. 아무래도 분만진통이 오는 것 같다는데요”

맙소사. 양지는 잠시 망연해졌다. 기가 막혔다. 기울어진 커피가 옷섶을 타고 주르르 흘러 내렸다.

때 절은 밤색 스웨터 아래 불룩하게 솟아있던 정남의 배. 신경안정제의 효력으로 죽은 듯이 얌전히 잠들어 있던 그 그을린 가면 같은 얼굴. 언니, 행복해 보일께. 차마 말은 못하고 남겼던 그 얌전한 글씨의 편지가 떠올라 더욱 밉고 안타까움만 부추겼다.

“아닐 거예요. 아직 예정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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