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청학동 금원산 그리고 원숭이
[현장칼럼] 청학동 금원산 그리고 원숭이
  • 최창민
  • 승인 2015.12.31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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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민 (창원총국 취재부장)
고려 때 문신 이인로는 청학동(이상향)을 찾기 위해 중앙권력을 팽개치고 지리산 하동 화개동천에 들어왔다.

‘두류산은 드높이 구름 위에 솟고/만학천암이 회계산 같네/지팡이 의지해 청학동 지리산 선경을 찾으니/숲속에선 속절없는 원숭이 울음소리만 들리네/누대에선 삼신산이 아득히 멀고/이끼 낀 넉자 글씨 아직도 희미하네/신선이 사는 곳이 어디인가/꽃잎 떠 흐르는 물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네.’

그의 시에 뜬금없이 원숭이가 등장한다. 이인로가 원숭이 울음소리를 정말 들었을까.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원숭이가 있었을까라는 의문까지 든다. 중국과 일본에도 원숭이가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은 가능하다.

이인로가 어느 날 천마산에 올라 암각 된 시를 보았는데 여기에도 원숭이가 등장한다. ‘달이 걸려 있는지 몇 해가 되었을꼬, 길이 험해 원숭이 팔이 매달렸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말년에 집필한 그의 저서 ‘파한집’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뿐이 아니다. 조선후기 문신 남유용의 뇌연집에도 원숭이가 등장한다. ‘아침에 해가 드니 원숭이와 학이 움직이고 말을 타고 나도 이제 떠나야 하리, 고개를 다시 돌아 사인암을 잊지 않으려니, 나는 하늘 찌를 듯 솟은 너를 좋아하노라.’

신라 때도 원숭이가 살았음을 추정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일화인데 이차돈이 순교할 때 ‘감천이 갑자기 말라서 물고기와 자라가 다투어 뛰고 곧은 나무가 저절로 부러지며 원숭이들이 떼지어 울었다’고 적고 있다.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은 그의 사설시조 장진주사(將進酒辭)에서 ‘잰납이 파람 불제야’라는 시구로 원숭이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그리고 있다. 여기서 잰납이는 ‘빠르다’의 잰과 ‘원숭이’ 납의 합성어로 잔나비, 즉 원숭이를 의미한다.

보다 실증적인 것은 동굴에서 발견된 화석이다. 충북 제천시 송학면 점말동굴에서 코뿔소의 뼈와 짧은 꼬리 원숭이의 화석이 발견됐다. 이 외에도 청원군 가덕면 노현리 시남마을 두루봉 동굴과 평양 상원군 검은모루동굴에서 원숭이뼈 화석이 발견됐다.

최근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이 ‘원숭이 해’인 병신년(丙申年)을 맞아 전국 140만여 개 지명을 조사했는데 원숭이와 관련된 곳은 모두 8개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용(1261개)이나 말(744개), 호랑이(389개), 양(40개) 등과 관련한 지명과 비교하면 수치가 적은 편이다.

특히 거창군과 함양군에 걸쳐 있는 금원산(金猿山)은 황금원숭이 산이라는 뜻으로, 금빛 원숭이가 ‘원암(猿巖)’이라는 바위에 갇혀 있다는 설화에서 유래됐다. 인근의 상천마을은 ‘황금원숭이 마을’로도 불린다. 남해군 납산은 산 모양이 원숭이를 닮아 ‘원산(猿山)’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이처럼 선인들의 문집이나 마을과 산의 지명에 원숭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적어도 우리나라에 원숭이가 살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의 학문과 생활속에 원숭이가 살아 있었고 우리들의 마음 속에 원숭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병신년 원숭이해다. 원숭이는 모정의 상징이기도 하다. 죽은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가르자 자식을 잃은 슬픔에 창자가 끊어져 있었다는 것에서 마음이 몹시 슬프다는 뜻의 ‘단장(斷腸)’이라는 말이 나왔다.

또한 재주가 많고 영리함을 의미한다. 우리의 마음 속에 살아 있는 원숭이. 새해를 맞아 상징과 의미대로 똑똑하고 현명한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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