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7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74)
  • 경남일보
  • 승인 2016.01.1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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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74)

동지라는 낱말들이 좌절해 있던 양지의 무릎에다 무릇 큰 힘을 불어넣었다. 달랑 하나뿐인 기계를 믿고 매달린 세상 물정 어두운 과수댁의 쪽배와 같은 사업 열정이, 아니 ‘너라면’ 하고 인정해주는 신뢰가 양지로 하여금 재기의 불길을 당기게 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강영수 사장에게 양지를 추천한 사람은 친척집에 다니면서 양지의 됨됨이를 지켜 본 추 여사였다.

여자들이 기계부품을 다루는 일은 생소한 만큼 서툴고 어려웠다. 그러나 둘은 열심히 일감을 얻어와서 불량품 없이 납기 내에 일을 해냈다. 호기심 반 동정심 반으로 주어졌던 일감은 차츰 신뢰의 무게를 얹어서 불어났다.

양지는 이제까지의 직장 경험을 살려 복지를 우선한 사원 관리에 역점을 두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 위에 군림하지 않는데 신경을 썼다.

능률을 올리는 일은 어쩌면 간단한 원리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기름밥 먹는 이들 특유의 열등감을 자극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실천하는데 주력했다. 참 인간관계를 표출하면 독촉하지 않아도 근로자들 스스로 내 일인 양 열심히 성실하게 업무성과를 올려주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쪽의 무반응이 길자 추 여사가 확인을 한다.

종일 혼자 집에 갇혀 지내다시피 하는 사람이라 말이 고픈 추 여사는 전화만 시작하면 무슨 말이든 이어 붙여서 끊지를 않는다. 급한 업무연락 때문에 몇 번 곤욕을 치른 강 사장은 주방에다 아예 추 여사 전용 전화를 한 대 따로 놓았다.

양지는 손에 들린 수화기를 멀건이 내려다보았다. 사장이 낯설어 보이던 것이며 그녀의 말마다 왜 가시가 느껴졌는지, 가 엉뚱한 자격지심만은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에 상관없이 주위는 끝없이 저 나름대로의 변동을 획책한다. 병훈의 연락처를 알려 달라했으나 그것 역시 다시 생각하니 유치해졌다. 취소할까 했으나 꼬집어서 그 부분을 정정하기도 뭣해서 어물거리고 있는데 추 여사의 말은 계속 되었다.

“얼마 전에는 며느릿감 사진이라고 줄느런히 늘어놓고 자랑하길래 그러면 못쓴다고 내가 막 해댔어. 보란 듯이 성공해서 비웃는 남자를 콧대가 납작하게 만들자고 양지 꼬시던 게 언젠데, 양지가 어디 껌이야, 단물 다 빨아먹고 탁 뱉아 버리게. 아 말이야 바로 해서 집안일이야 선머슴이지. 된장국 하나 제대로 끓이는 며느리 볼려고 그러나. 그저 친정 배경 좋고 공주처럼 자란 애라야 여자답고 좋단다. 며느리가 무슨 인형이야. 이제 보니 여편네가 영 이중심리를 갖고 있잖아. 십 년이 넘게 살림 살아주고 진 일 궂은 일 의논하면서 살아 온 난데, 내 말 명심해서 들어야지 앞으로 회사 말아먹을 일 생길지 누가 알아. 아냐, 내 말이 꼭 맞지. 최 실장을 제쳐놓고 언감생심 그런 맘을 먹다니, 벌써부터 떨떠름한 게 영 조짐이 안 좋은데 탈이야 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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