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7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75)
  • 경남일보
  • 승인 2016.01.1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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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75)

“그거야 꼭 제가 사장님의 며느릿감이라는 것하고는 다르잖아요, 아줌마”

심심해진 하양이 아래층 수위 영감이랑 농담 따먹기라도 하러갔는지 자리에 보이지 않자 양지도 조금 언성을 높였다. 나쁘지만은 않은 기분을 음미하며 약간 퉁겼다. 천생 여자의 심리를 벗어나지 못한 자신의 반응에는 속으로 놀라며.



“그런 말 마라. 병훈이가 그림이나 그리지 회사에 대해서 뭘 알아? 온실에 화초처럼 피아노나 두들기고 노래나 부르던 미스 김인들 뭘 알아? 최 실장도 속 차려야 돼. 언제까지 강 영수 밑닦이만 하고 있을 거야? 어쨌든 병훈이를 잡아. 연락 오면 즉시 양지한테부터 알려 줄 테니까, 알았지?”

착 감기며 다그치는 음성으로 호칭마저 최실장이 아니라 사적으로 바뀌었다. 이 양반이 왜 이렇게 친절한가 늘 의문스럽던 이유도 밝혀졌다. 죽은 딸 은진이 같아서. 하나뿐인 혈육을 잃은 상실감이 어떤 심리작용을 하게 되는지 정남의 일을 겪는 동안 양지도 어렴풋 이해할 부분이 생겼다. 남이 보이는 친절에는 꼭 숨겨진 이유가 있었다. 타인이 보이는 엉뚱한 호의라 경계심이 일지 않는 것도 아니었으나 든든한 내편인데 꼭 잘라서 거절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회사의 존폐가 마치 병훈의 짝이 누가 되느냐에 달려있는 것처럼 안달인 추 여사의 은근한 부추김도 이유는 충분했다. 따지고 보면 ‘금강공업사’는 대표 강 영수의 것만 아니라 오로지 바깥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내조해준 추 여사의 십 년 공적도 있다. 친자매 이상으로 밀착되어있던 사장의 변모를 추 여사 그녀는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구심점이 와해되면 모임의 해체는 시간문제다. 그렇게 되면 공든 탑도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보람 없는 삶에 대한 인욕스러움을 추 여사는 알고 있다. 의지가지없는 외톨이 인간의 자기 보호 본능. 해서, 결곡한 부분까지 생각이 미친 추 여사의 깊은 사려는 양지와의 결속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다. 사장과 추 여사, 그들 두 여자는 얼추 같은 연배의 과수댁이다. 남자, 남자가 아니었어. 양지는 낮게 중얼거렸다. 이제껏 여자의 상대는 남자며 남자와는 항상 대립관계였고 그 남자에 의해서 여자는 정복당하고 파괴당해 왔음을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 판단은 양지의 오류였다.



출입문을 열자 기다리고 있었단 듯 세찬 바람 한 줄기가 와락 달려들었다. 윽, 소리를 지르며 양지는 뒤로 주춤 물러섰다. 반사적으로 허리를 구부리며 몸을 웅크렸다. 제법 차가운 냉기가 노출된 피부를 파고들었다. 일교차가 심할 테니 감기 조심하라던 기상대의 예보가 선뜻 다가와 있었다. 옷깃을 여며도 얼음찜질을 한 것처럼 피부에 접착된 냉기는 쉬 가시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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