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브 니꼴은 1777년 12월에 프랑스 랭스에서 니꼴라 뽕사르댕 백작의 딸로 태어났다. 바르브 니꼴 클리꼬(혼전 성씨는 뽕사르댕)가 27세이던 1805년 10월 23일에 그의 남편 프랑수와 클리꼬는 33년 전인 1772년에 설립하여 연간 10만 병을 생산하던 샴페인 양조장을 남겨주고 세상을 떠났다. 라 뵈브 클리꼬 즉 ‘미망인 클리꼬’ 또는 ‘위대한 샴페인 여인’이라 별칭으로 불리던 그녀는 샴페인 양조장을 경영하게 된 첫 번째 여인이자, 근대사에 있어서 최초의 여성 사업가가 되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바르브 니꼴 클리꼬는 시댁의 사업을 물려받아 자신의 결혼 전 성을 붙여 뵈브 클리꼬 뽕사르댕이라는 이름으로 샴페인을 출시한다. 1804년부터 붜브 클리꼬 뽕사르댕이라 명명하게 되었다. 그녀는 대담하고 의지가 굳은 근대 최초의 비즈니스 우먼으로, 나폴레옹 전쟁의 혼란기에 남편을 잃고, 남편과 함께 일궈나가던 와인 사업을 도맡아 엄청난 정치적·경제적 격동기를 거쳐 당대에 최고로 부유한 여성이 된다.
그녀는 남들과는 다른 강한 개성의 소유자였고 뛰어난 사업가적 감각을 가졌기에 회사 운영을 훌륭하게 잘 해내었다. 그녀는 샴페인 속 부유물과 찌꺼기를 제거하여 보다 투명하고 순수하며 맑게 만드는 르뮤아주 공법을 고안해냈다. 이 기술은 현재 모든 샴페인 양조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녀는 랭스의 산악 지역과 꼬뜨 드 블랑지역 여러 곳에 걸쳐 포도원들을 조금씩 조금씩 인수해 특별한 포도 재배의 문화적 유산을 이루게 된 500 헥터가 넘는 최상의 명품 포도원들을 이뤄내게 되었다. 뵈브 클리꼬 샴페인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포도재배 방식에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로 손꼽힌다.
뵈브 클리꼬 샴페인은 화려함, 스타일, 그리고 호사스러움을 상징하며 프랑스, 영국, 러시아 궁정에서 사랑받는 최고급 샴페인의 자리를 지켜왔다. 뵈브 클리꼬는 경영과 직원 관리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샴페인 제작 기술에서도 중요한 공로를 남겼다. 이른바 ‘르뮤아주 공법’을 통하여 샴페인의 품질을 향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뵈브 클리꼬 샴페인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그녀는 19세기 사람의 발상을 뛰어넘어 대담하게도 샴페인 병의 레이블을 노랑색으로 장식하여,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전통과 현대성, 럭셔리를 상징하는 코드로 쓰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