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단상] 봄볕이 눈부신 날에 그리운 이들
[월요단상] 봄볕이 눈부신 날에 그리운 이들
  • 경남일보
  • 승인 2016.04.10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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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수필가)
긴 잠에서 깨어난 나뭇가지에는, 새잎과 새 촉으로 움터오고 연두색으로 물들어가는 그 신비로운 경이(驚異)를 바라보지 않는 이가 어디 있으랴.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의 생활인데도 여유롭게 봄 생각만을 할 수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봄은 빈틈없이 새벽부터 틈과 틈새를 비집고 파고 들어와, 우리의 일상 어느 곳일지라도 찾아들고야 만다. 아니 생각하건대 흙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며 고향을 지키고 사랑해 온 이들만이 함께 누려야 할 그들의 몫이듯 봄은 그렇게 찾아오는 건 아닐까?

이 봄날 소년 시절이 그리워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누구나 지난날의 추억은 소중하고 아름답지만 그것이 소년소녀의 시절이라면 더욱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내 고향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마항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다닐 때였으리라. 정문 앞을 나서면 수승대 댓바위를 가로질러 흐르는 계곡물은 누구의 그리움인지, 경치 좋은 측수대 앞에 와서는 차마 떠나지 못하고 쉬었다 갈 수밖에 없는 강물(위천천)을 벗 삼아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쓴다며 자연과 함께한 그때가 어찌 그립지 않으랴.

눈이 시리도록 옥빛 하늘이 환히 들려다 보이는 강가에서 떠오르는 수많은 얼굴들. 그 얼굴들을 오래 너무 오래 잊고 살은 건 아닐까. 생각나고 보고 싶고 더러는 이름도 모습도 지워져 가지만, 나를 좋아하고 미워했던 그 얼굴들은 어디쯤의 강가에 숨었을까? 숨었다가 이 봄날 새잎처럼 움터오듯 살며시 고개 내밀 때, 지난날의 부끄러움도 지금에 와서는 현재와 앞날을 잇는 소중한 재산이라고 믿으리다.

하찮은 추억도 다듬을 때 소중한 가치로 나타나고, 그 과거를 추억함으로써 건조한 일상에 윤활유를 쳐주는 격이 아닌가. 무디고 정감이 없는 하루하루를 촉촉한 물기로 움틔우는 것 또한 지난날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생각하고 그리워할 때 지난날에 대한 의미가 있고, 지난날을 생각하고 몸소 겪어보는 훗날이 없다면 어찌 아름다울 수 있으랴. 과거를 생각하며 오늘을 살고, 오늘을 살며 미래를 계획하는 지난날의 추억에서 현재도 내일도 아름답게 이어갈 수 있길 바라자.

모름지기 오늘처럼 봄볕이 눈부시게 쏟아질 때, 지난날을 떠올릴 수 있는 건 아마도 그 시절을 생각하는 그 시간만큼 젊음을 느껴보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소년소녀시절의 친구들은 그리운 것, 오늘 같은 봄날 그들이 새삼스레 소중하게 느껴지며 보고 싶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그리워할 때 그리워할 줄 알고 또 사랑할 때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이석기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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