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세돌과 인공지능(AI)을 탑재한 구글의 알파고와의 바둑대국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로부터 며칠 후 과학계, 정부 부처, 각 산업체로부터 차세대 동력산업으로서 인공지능을 육성하겠다는 소식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최근 3D 프린팅, 빅데이터 산업, 사물인터넷(IoT), 드론 등이 우리나라의 차세대 동력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이 분야에서 이미 상당한 발전을 이룬 선진국들을 볼 때 우리나라는 뒤늦게 기술 종주국들을 쫓아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과거에 우리나라가 기술 종주국이 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 흐름의 방향을 읽지 못해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도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상기하면 더욱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스마트폰의 OS인 안드로이드를 개발한 회사는 최초로 국내의 업체와 접촉했으나 거절당하고 얼마 후 구글에 인수되었다고 한다. 또 인텔의 3차원 반도체 기술, 독일 SAP사의 ‘하나(HANA)’라는 빅데이터 처리기술 역시 국내 대학 교수들이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나 기업들이 없었다고 한다.
지난 4월 19일 2차 국가지식재산기본계획의 밑그림을 그릴 ‘제1회 IP 서밋 컨퍼런스’가 서울에서 열렸다. 발표 내용 중에서 우리나라의 특허품질과 산업 경쟁력을 가늠하는 표준특허 점유율이 미국의 1/4, 일본의 1/3 정도에 그쳤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낮은 인건비와 우수한 기술력으로 앞서가고 있는 중국과 선진국 사이에 끼어 있는 상태이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이 점차 한계산업으로 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정부나 관련 부처들은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의 의견을 주시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가장 강조하는 ‘지속 가능하고 일관된 과기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권교체와 더불어 바뀌는 이벤트성, 홍보성 정책으로는 퍼스트 무버형 연구성과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필자는 작년 중앙장비심의위원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정부예산을 받는 사업들 중 중복된 3D 프린터기 구입으로 인하여 필요 시 재구입을 원할 때 정작 허가가 어려워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산의 낭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중복된 투자에 대한 철저한 점검과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행정부로부터의 과학기술 정책기관의 독립과 자율성 보장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행정부의 거수기로 전락하게 된다는 미국의 과학기술 발전사를 굳이 참조하지 않더라도 정부나 관련부처는 연구에 더욱 매진할 수 있도록 일관된 지원제도 확립과 환경조성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임금피크제 등으로 인하여 동기부여와 사기가 떨어져 있으며 국가 출연연구소는 PBS제도로 인해 지속적이고 일관된 연구를 진행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아울러 연구과제의 효율적 관리를 위하여 현재의 부처별 관리체계 대신 미래창조과학부가 범부처 공통 관리시스템을 구축하여 행정적 혼선을 줄여주기를 당부한다. 정부와 20대 국회는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투자방향을 설정하고 실패에 대해 두려움 없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 주고 과학기술계와의 원활하고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지원은 하되 간섭은 최소화하는 정책과 제도들을 조속히 확립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이부일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