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4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40)
  • 경남일보
  • 승인 2016.05.0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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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40)

급한 김에 뛰어서 화장실로 직행하느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장식들이었다. 하늘을 가리고 있는 만국기, 바람개비. 어디 주유소개업이라도 했나보다. 읍사무소에서 우체국으로 지서까지 축제의 깃발은 연이어져 있었다. 한바탕 매구를 쳤는지 땀을 닦으며 술잔을 나누고 있는 농악패들의 울긋불긋한 모습도 보였다. 그뿐 아니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사람들마다 돼지고기 안주에 술을 마시고 있다. 정류장은 전보다 훨씬 비좁아졌다. 실비집, 노래방, 당구장 등의 간판이 붙어 있는 삼층 건물이 새로 들어섰다. 저쪽으로 낡은 매표소 건물을 뜯다 말고 잠자는 공룡처럼 코를 처박고 있는 포클레인이 보인다.

어딘가 모르게 옛 모양이 많이 변했다. 그 가운데서도 모두들 잔치 기분에 젖어있는데 이방의 나그네처럼 양지 혼자 외톨이였다. 시선을 줄 곳도 서 있을 곳도 마땅치 않다. 양지는 뜯기다만 매표소 쪽으로 걸어갔다. 이미 가게도 철거되었다. 모처럼 집에 올 때면 동생들과 어머니에게 줄 선물을 옆에 놓고 표를 사던 곳이었다. 먼지 앉은 진열대에 총채질을 하다가 표를 끊어주던 뱃살이 퉁퉁한 아줌마도 보이지 않는다.

“대평 가는 차는 어디서 타야합니까?”

양지의 물음에 일회용 접시에 담겨있는 경단을 집어 들어 입으로 가져가던 젊은 여자가 해반닥 고개를 들었다. 어매 뭘 모르는 갑네. 그런 표정이었다. 양지는 머쓱해져서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여게 처음 온 모양인디 쪼맨만 기다리 봅시다. 우리 모두 그리로 갈 사람들인께”

둘러앉은 사람들 속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끼어들었다. 그제야 양지에게 관심을 보이며 여기저기서 음식을 같이 먹자고 권하기도 했다. 둘러보았지만 안면 있는 사람은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때 아, 온다, 온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모여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일어났다. 지서 옆 공터 쪽에서 소형버스 한 대가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왔다. 아, 저거였구나. 양지는 새 차에 둘러쳐진 휘장의 글귀를 훑었다. -축 대평-수곡 간 마을버스 개통-.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몰려들어 차를 에워쌌다. 활짝 열려진 문에서 말쑥한 정장 차림의 키 큰 청년이 내려왔다. 뒤이어 청년이 돌아서서 뻗어 올린 손을 잡고 부한 몸매의 노부인이 함박꽃처럼 활짝 핀 웃음을 보이며 내려왔다. 아. 양지는 저도 몰래 짧은 놀라움을 토해냈다. 당골네. 그렇다면 저 청년은 기철이다. 선거에 출마한다는, 좀 전에 화장실에서 들은 소리가 퍼뜩 생각났다. “돈 한나 안내고 공짜로 타고 댕기도 된담서요?”

떡을 먹던 아까 그 젊은 여자가 조금 모자라 보이는 얼뜬 표정으로 옆 사람에게 묻는 소리였다. “하모. 한 시간에 한 번썩이라니깨 하루에 몇 변은 왔다갔다 할끼구마”

“아이구야, 돈이 울매나 많아서 동네 사람들한테 이런 적선을 다하꼬”

감동하고 탄복하는 말들은 여기저기서 어울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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