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4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41)
  • 경남일보
  • 승인 2016.05.01 16: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양이들-141 사본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41)



“우리 아들이 서울 있는 저그 큰 누부캉 의논해서 희사한 차니깨,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리에 백 번도 좋고 천 번도 좋고 마음 놓고 타고 댕김서 일들 보시라꼬요. 예에, 예에”

자비로워 보이는 푸진 미소와 함께 명자 어머니의 말이 떨어지자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모자는 너그러운 웃음을 만면에 싣고 굽실굽실 허리 굽혀 답례를 한다. 양지는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펴보았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뿐인 걸 다행으로 여기며 무리에서 뒷걸음쳐 물러났다.

“자, 집에 가모 또 술도 쌨고 괴기도 쌨심니더. 어서어서 타이소. 이리 자시고 말랍니꺼. 우리 한 번 떡 벌어지게 축하파티를 해보입시더”

육덕 좋은 몸매에 기름기마저 자르르 느껴지는 당골네의 목소리. 오늘 드디어 활짝 피어난 귀한꽃인 양 기품 있고 화사해 보인다.

양지는 머리를 저었다. 되도록 단순해지고 싶었다. 과거의 어두움에 지배되어 현재가 방해받고 있다면 과감하게 토막 쳐서 기억을 없애야 한다. 하지만 뇌리 속에 박혀서 육화 되다시피 한 일들은 없앤다고 없어지고 잊으련다고 쉬 잊어지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반되게 현재와 과거의 어우름을 서성거리고 있는 자신을 자주 의식하게 된다. 명자네에 대한, 관계없는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될 아버지의 구박과 증오를 보면서 자신은 이미 그때 두 집의 미묘한 관계를 짐작하고 있었음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숭숭하고 난해한 일들에서 방해받지 않도록 멀리 까맣게 망각 속에다 고향을 방치해 왔을 뿐.

‘외롭게, 없이 사는 것도 서러운데 상촌양반은 와 그리 우리 아아들 아부지를 못 잡아 묵어서 그라요, 신당에 고하고 물어봐도 당최 괘가 안 빠지요. 부모 쥑인 원수도 아니고, 전생에 무슨 웬수가 맺혔다꼬. 상전이 벽해 될 날 있다꼬 우리도 자슥 키우요. 참말로 와 그라요?’

땅을 치며 악다구니를 퍼붓는 아내 곁에 북짐을 진 채 우두커니 서 있던 명자아버지. 아내와 같이 다니며 엿장수를 할 때는 달비요, 삼터럭이요, 아내의 입을 따라 같이 뻐끔거리기라도 하더니 신이 내려 당골네가 된 아내의 북짐을 지고 다니면서는 아예 입을 떼지도 않아 천생 등신 같아진 사내였다. 맥없이 사위어 가는 남편의 형상이 너 때문이라고 따지듯이 명자의 엄마는 목청껏 아버지께 앙석을 했다. 그리고는 전혀 딴 사람이 된 듯 구슬프게 청을 뽑았다.

‘아서라 이 세상 초로 같은 인생살이, 아웅다웅 산다 캐도 저승 문이 코앞이다. 개천아 네 그러나 눈먼 봉사 내 그러지. 그렇지만 상전이 벽해란다. 쥐구녕에도 볕들날 있는 벱이다. 아들 자석 키아서 정승판서 맹글고 딸자석은 키아서 요지연으로 보내는 꿈 밤이 짤라 몬꾸것나 하룻밤에도 열두이다 ….

명자 역시 양지 앞에서 들어 새기란 듯 똑똑히 말했다.

‘내가 왜 그렇게 미친년처럼 돈, 돈하며 내 청춘을 바꾸었는데?’

양지는 도도하게 내뱉던 명자에게 박수라도 보내야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