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4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44)
  • 경남일보
  • 승인 2016.05.0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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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44)

양지는 조금 자리를 옮겨 앉으며 목을 기웃 뽑았다. 알을 먼저 꺼내기 위해서, 또는 개나리 울타리 밑으로 어미닭이 병아리를 데리고 산보를 나서면 솔개가 덮치지나 않을까, 망을 보던 때 생각을 했다. 계란, 계란……. 그 순간 문득 계란 반찬 일색으로 상을 차려 아버지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수치스러운 기억까지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얼른 고개를 저어버렸다. 사회에 나가보니 그 시절에도 진취적이고 개방적으로 산 사람들은 많던데 유독 아버지만 왜 그렇게 어둡고 고통스러운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얽어 넣어서 괴롭혀 왔는지. 되도록 단순하게 사고력을 제어해도 눈길 머무는 곳마다 한 맺힌 추억 한 점 씩 서려있지 않은 곳이 없다.

알매가 푸스스 흘러내리다 간신히 엉켜 붙어있는 처마 끝을 올려다보고 있던 양지는 스치는 생각의 한 끝을 잡고 섬돌의 층계를 내려섰다. 부엌 쪽의 후원으로 돌아 갈 참이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양지가 어릴 때만해도 이 집의 상징이다시피 하던 넓은 대밭이 있었고 돌배나무가 고목의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버티고 있던 곳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진사댁이라고 불렸던 윗대의 명당 터는 대밭 언덕의 상단에 수려하고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우거진 잡초넝쿨로 인해 그곳에 어떤 건물이 있었고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지 목격했던 사람 아니면 몰라보게 변해버린 사당 터.

‘어느 해부터 가화(家禍)가 일어서 사람이 죽고 농우가 죽고 자꾸 우환재책이 일어나더란다. 하는 수 없어서 이 터로 내려서 집을 짓고 가화는 면했으나마 손(孫)이 안 나더란다’

동묏등에 널어놓은 목화를 따면서 어머니는 집안의 내력을 그렇게 이야기해 주었었다. 얼마 전 명자가 말하는 그 억울한 내막을 듣게 되자 비로소 그때 어머니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생각났지만 그 이전에는 거저 어느 동네에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들은 듯 무심히 흘려들어 버리려했다. 가화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는 가화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동시에 마치 그 가화를 다시 당하기라도 할 듯 질겁한 표정을 굳히며 그딴 건 몰라도 된다며, 공연히 일손 느리다고만 지청구를 해서 말머리를 돌렸었다.

축대를 내려서 부엌으로 돌아가던 양지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군불용 땔감 몇 뭉치가 동개동개 포개져있는 찬방 모퉁이를 도는데 갑자기 후욱 담배 연기가 감지되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린 양지는 자지러질 듯 한 놀라움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뜻밖에도 아버지가 거기 서 있었다. 얼마 전에 보았던 그 색 바래고 낡아 보이던 희불그레한 사파리차림 그대로였다. 골똘한 생각에 잠긴 얼굴로 오직 담배를 피우는 일에만 집중해 있던 아버지는 뒤에 누가 왔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얼마 만에야 꽁초를 휙 집어던져 밟으며 돌아서던 아버지가 양지를 발견했다. 이어서 뱉으려던 담배 침을 꿀꺽 삼키며 짐짓 굳은 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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