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4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45)
  • 경남일보
  • 승인 2016.05.0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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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45)

얼마 전 자취방을 찾아 왔을 때의 주눅 든 모습이 아닌 여느 창창하던 때의 아버지 얼굴이 거기 그대로 드러났다.

“나는 또, 니 에미가 왔다꼬…”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한 듯 아버지가 먼저 실망스러운 티를 냈다. 그리곤 금방 피우고 끈 담배를 다시 한 대 꺼내서 피워 물었다. 수인사 따위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 서로의 생각과 행동을 너무 환히 꿰뚫고 있는 사람들처럼.

“면소 있는 데는 난리법석이 났쟤?”

기철이네, 그 차를 타고 오지 않았느냐는 물음일 것이었다. 호남의 일에 대해서는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것인가. 양지는 대답대신 아버지를 쏘아보았다. 호남의 불상사에 대한 가족적인 교감보다 먼저 명자네가 주재하는 잔치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너희들도 남의 딸자식인데 왜 그런 영화는 안 보여 주느냐는 나무람으로 들린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대답은 기대하지도 않았다는 듯 외면하며 두어 번 더 빨던 담배를 발로 비벼 끈 뒤 아래채 뒤의 더그매로 올라 가버렸다.

호남의 일을 아버지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가, 아니면 알고도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으로 몇 걸음 아버지 쪽으로 걸어가다가 멈추어버렸다. 아버지는 이제 가까이하고 참여시키는 대로 도움이 되기보다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라는 생각이 앞을 가렸던 것이다.

양지는 아버지가 돌아간 아래채의 담벼락을 흘겨보며 얄궂은 심사에 부대꼈다. 명자를 부러워하지 말고 아버지의 단견을 통탄하세요. 딸자식들이 언제나 어리기만 할 것이라서 그렇게 모질스럽게 싹을 짓밟았던가요. 또 그런 억하심정이 뻣뻣하게 목젖을 타고 오르는 것을 억지로 눌렀다.



어느덧 건너 편 산자락으로 해 그림자가 뉘엿거리기 시작했다. 양지는 아까부터 마당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있었다. 동그라미가 소복하게 발끝에 그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마음을 실은 동작은 하나도 없다. 그저 하나의 입상처럼 스카프를 바람에 날리며 서있을 뿐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대안이 떠오르지 않고 머릿속만 복잡했다. 저녁때부터 급강하하기 시작한 추위를 견디려면 어머니가 비운 냉방에다 어둡기 전에 군불을 지펴야했다. 변변히 먹은 것도 없는 허기진 뱃속에다 음식물을 공급하기 위한 어떤 노력이라도 행동에 옮겨야할 것이다. 전기밥솥에다 밥을 안치고 김치 국이라도 끓이면 식사해결은 될 것이다. 하지만 호남이가 어머니의 내침을 당해가면서 사다 날랐을 듯싶은 편리한 가전용품들이 냉장고에서 커피포트까지 불편 없이 갖추어져 있지만 선뜻 손이 가지지 않는다. 객석에 앉아서 영화를 보듯 해도 될 남의 일이 아닌데도 도무지 주위의 일들에 대한 감응이 일어주지 않는다. 의식은 상고시대에 있으면서 생활은 현대에 있는 이 모순적인 집안의 기현상이 그녀를 이상한 혼란 속으로 젖어들게 한다. 습관은 참 고질적인 병이라는 생각이 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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