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여성칼럼]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2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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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순 (전 진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 상담소장)
최근 어버이연합 관련 뉴스가 텔레비전 화면과 신문지면에 등장했다. 어버이연합이 전경련의 돈을 받아서 노인들에게 돈을 주면서 각종 시위에 동원했다는 뉴스이다. 이와 관련해서 청와대 행정관이 이분들의 시위를 구체적으로 지시했는가도 주요 쟁점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 사건이 지니는 정치적 의미는 무엇보다도 엄중한 것이어서 그 진실이 낱낱이 드러나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만, 시선을 약간 돌려서 어버이연합에 동원된 노인들에 초점을 맞춰보면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노인들을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노인들을 소위 정치적·경제적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몇 푼의 돈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도구로 이용하는 행태를 보면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내팽개쳐버린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본다. 물론 기득권층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노인들을 대하는 태도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을 가진 인간으로 보기보다는 고정관념 속의 집단으로만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태도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또한 예외는 아니다. 노인들을 자신들의 선전을 받아들이는 대상으로만 여길 뿐 노인을 위한, 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그런데 최근 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프로그램이 나타났다. ‘힙합의 민족’이라는 프로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노인을 대하는 방식을 개선할 수 있는 실마리를 보았다. 노인의 나이에 있는 여성 연예인들이 젊은이들의 장르라고 할 수 있는 랩에 도전해 경연을 펼치는 내용이다. 8명의 출연 연예인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주변의 노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여러 모습들(포용적이거나 독선적이거나/감정을 억제하거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거나/가르치려고 든다거나 위축된 모습을 보인다거나)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노인 캐릭터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이 프로그램은 첫 경연주제로 ‘인생song’을 제시함으로써 그 단서를 제공한다. 랩이라는 젊은이의 장르로 노인들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풀어내게 하는 접근방식이 그것이다. 가장 독선적으로 보였던 한 캐릭터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그것을 랩으로 녹여내는 과정에서 그 자신이 다소나마 치유되고 마음이 열리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양한 개개인의 노인들을 단지 대상이나 도구로 보고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한 삶의 열정과 에너지를 가진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중할 때, 세대 간의 의사소통이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노인이든 여성이든 장애인이든 사회경제적 약자이든,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태도가 회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은 그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어버이연합 사건과 ‘힙합의 민족’을 보면서, 이 사건과 프로그램이 우리 사회의 노인에 대한 태도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여성학자 벨 훅스가 이야기했듯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가난하든 부자이든, 장애가 있든, 장애가 없든 ‘우리 모두가 그냥 나인 채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강문순 (전 진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 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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