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석가탄신일에는 불교를 으레 생각하게 된다. 불교는 이성의 힘으로 인생의 진리를 깨달아야 하는, 즉 깨달은 자와 깨달음의 종교라 볼 수 있다. 궁극적 이상은 중생이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한 자유와 행복을 성취하는데 있다고 봐야 한다. 이 세상 생명이 있는 것들은 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인간을 두고는 일체중생(一切衆生) 실유불성(悉有佛性)이라고도 했다.
불교는 불타(佛陀)의 교훈이기도 하다. 고타마 싯달타는 인생의 회의를 품고 29세에 출가하여 6년의 고행과 명상 끝에 우리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수많은 진리를, 즉 평범한 인간으로서 깨달을 수 없는 인생의 크고 작은 진리를 깨달은 자라 볼 수 있다. 고타마 싯달타는 인간이었기에, 누구나 진지한 태도로 수양을 하면 불타가 될 수 있고, 불성을 지님으로써 굴레에서 벗어나 높은 경지에 올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자유자제경(自由自在境)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석가는 인간이 신을 인식할 수 없다는 인생의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의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후 세상과 아니면 인간의 영혼이 육체의 생멸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속한다고 하는, 이를테면 윤회설 같은 것을 사유나 직관에 의해 탐구하는 종교적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과 흥미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힘으로 알 수 없는 것보다는 알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문제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어느 한 제자가 석가에게 질문을 했다. “우주에 관해서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는가. 유한한가, 무한한가. 또 영혼과 몸은 함께인가, 서로 다른가.” 그러나 석가는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한 형이상학적인 논의는 깨달음에 도움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훗날 중국 춘추시대의 공자 역시 석가의 입장과 같았다. 제자가 죽음의 문제를 물었을 때 “생(生)이 무언지도 모르거늘 내 어찌 죽음에 대해 알 수 있단 말인가”라고 대답 했다. 인간의 인식을 초월한 형이상학의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불타는 가장 완전하다고 여길 수 있는 인간상이다. 그는 스스로 진리를 깨닫고 중생들에게 복을 주고 괴로움을 없게 하는 자로서 그가 깨달은 내용이 바로 불교이다. 그러한 내용은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진리라고 볼 수 있다. 많이 깨달음으로써 해탈의 자유자재경에 도달할 수 있듯 높고 깊은 깨달음이 해탈이요 구원이다. ‘내가 나의 등불이요, 진리가 나의 등불’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자기 자신과 진리를 믿고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것이 석가의 교훈이 아닐까 한다.
불교는 불타(佛陀)의 교훈이기도 하다. 고타마 싯달타는 인생의 회의를 품고 29세에 출가하여 6년의 고행과 명상 끝에 우리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수많은 진리를, 즉 평범한 인간으로서 깨달을 수 없는 인생의 크고 작은 진리를 깨달은 자라 볼 수 있다. 고타마 싯달타는 인간이었기에, 누구나 진지한 태도로 수양을 하면 불타가 될 수 있고, 불성을 지님으로써 굴레에서 벗어나 높은 경지에 올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자유자제경(自由自在境)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석가는 인간이 신을 인식할 수 없다는 인생의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의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후 세상과 아니면 인간의 영혼이 육체의 생멸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속한다고 하는, 이를테면 윤회설 같은 것을 사유나 직관에 의해 탐구하는 종교적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과 흥미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힘으로 알 수 없는 것보다는 알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문제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어느 한 제자가 석가에게 질문을 했다. “우주에 관해서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는가. 유한한가, 무한한가. 또 영혼과 몸은 함께인가, 서로 다른가.” 그러나 석가는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한 형이상학적인 논의는 깨달음에 도움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훗날 중국 춘추시대의 공자 역시 석가의 입장과 같았다. 제자가 죽음의 문제를 물었을 때 “생(生)이 무언지도 모르거늘 내 어찌 죽음에 대해 알 수 있단 말인가”라고 대답 했다. 인간의 인식을 초월한 형이상학의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불타는 가장 완전하다고 여길 수 있는 인간상이다. 그는 스스로 진리를 깨닫고 중생들에게 복을 주고 괴로움을 없게 하는 자로서 그가 깨달은 내용이 바로 불교이다. 그러한 내용은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진리라고 볼 수 있다. 많이 깨달음으로써 해탈의 자유자재경에 도달할 수 있듯 높고 깊은 깨달음이 해탈이요 구원이다. ‘내가 나의 등불이요, 진리가 나의 등불’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자기 자신과 진리를 믿고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것이 석가의 교훈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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