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단상] 석가의 교훈(敎訓)
[월요단상] 석가의 교훈(敎訓)
  • 경남일보
  • 승인 2016.05.0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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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석가탄신일에는 불교를 으레 생각하게 된다. 불교는 이성의 힘으로 인생의 진리를 깨달아야 하는, 즉 깨달은 자와 깨달음의 종교라 볼 수 있다. 궁극적 이상은 중생이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한 자유와 행복을 성취하는데 있다고 봐야 한다. 이 세상 생명이 있는 것들은 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인간을 두고는 일체중생(一切衆生) 실유불성(悉有佛性)이라고도 했다.

불교는 불타(佛陀)의 교훈이기도 하다. 고타마 싯달타는 인생의 회의를 품고 29세에 출가하여 6년의 고행과 명상 끝에 우리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수많은 진리를, 즉 평범한 인간으로서 깨달을 수 없는 인생의 크고 작은 진리를 깨달은 자라 볼 수 있다. 고타마 싯달타는 인간이었기에, 누구나 진지한 태도로 수양을 하면 불타가 될 수 있고, 불성을 지님으로써 굴레에서 벗어나 높은 경지에 올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자유자제경(自由自在境)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석가는 인간이 신을 인식할 수 없다는 인생의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의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후 세상과 아니면 인간의 영혼이 육체의 생멸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속한다고 하는, 이를테면 윤회설 같은 것을 사유나 직관에 의해 탐구하는 종교적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과 흥미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힘으로 알 수 없는 것보다는 알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문제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어느 한 제자가 석가에게 질문을 했다. “우주에 관해서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는가. 유한한가, 무한한가. 또 영혼과 몸은 함께인가, 서로 다른가.” 그러나 석가는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한 형이상학적인 논의는 깨달음에 도움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훗날 중국 춘추시대의 공자 역시 석가의 입장과 같았다. 제자가 죽음의 문제를 물었을 때 “생(生)이 무언지도 모르거늘 내 어찌 죽음에 대해 알 수 있단 말인가”라고 대답 했다. 인간의 인식을 초월한 형이상학의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불타는 가장 완전하다고 여길 수 있는 인간상이다. 그는 스스로 진리를 깨닫고 중생들에게 복을 주고 괴로움을 없게 하는 자로서 그가 깨달은 내용이 바로 불교이다. 그러한 내용은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진리라고 볼 수 있다. 많이 깨달음으로써 해탈의 자유자재경에 도달할 수 있듯 높고 깊은 깨달음이 해탈이요 구원이다. ‘내가 나의 등불이요, 진리가 나의 등불’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자기 자신과 진리를 믿고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것이 석가의 교훈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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