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4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47)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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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147 사본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47)

“기증?”

뜻밖의 소리인 듯 아버지가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답을 기대하고 물었던 것도 아니어서 관심을 돌리려는데 아버지가 덧붙였다.

“뭐, 기증을 하든 어쨌든 모리것다. 니 에미가 지금 또 명지베 길쌈을 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 새삼스럽게 찾아 낸 베틀의 용도는 분명해졌다. 양지는 가슴에다 바늘쌈을 넣고 있는 것 같다. 또 아버지의 어투도 걸렸다.

“이제 엄마에 대한 호칭도 좀 달리 했으면 좋겠어요. 식몬지, 종인지”

아버지의 표정이 조금 신둥해졌다. 그러더니 작심한 듯이 참고 있던 울화를 터뜨렸다.

“또 그까짓게 문제가? 너긋들 눈에는 니 에미만 뵈이고 이 애비는 안뵈이나? 그란깨 가스나 자슥은 말짱 황이라 카제. 아이구우, 내 쏙을 누가 알아줄꼬”

양지는 아버지의 말에는 반응하지 않고 내친 김에 참고 누르려던 말을 연달아서 뱉어냈다.

“들어오다 보니 저기 비석모듬에 있던 고목들이랑 또 집 주변에 있던 팽나무 참나무들이 모두 베어지고 없던데요?”

아늑하게 동네를 감싸고 봄이면 신록으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이면 가을대로 변화하는 운치를 선사하던 기품 있던 고목들. 해묵은 동네의 표상임과 동시에 은근한 자존심이기도 했던 것들. 동네 초입으로 들어서면서 이 남벌을 발견한 양지는 아버지가 필요로 하는 목돈과 무관하지 않다는 예감을 하기는 했다. 막상 어머니의 평생을 녹여먹은 명주베틀의 용도까지 환하게 연결되는 상황을 보니 기가 막혔다. 웬 엉뚱한 소리로 얘기의 흐름이 바뀌냐는 듯 마뜩찮게 아버지의 표정이 바뀌었다.

“목각 예술인가 뭰가 한다는 사람들이 엊그제 제재소 사람 델꼬 와서 몽땅 정리를 했다. 수리가 들어서도 오래 못 갈 것들…”

갑자기 엉뚱한 말이 양지의 입에서 틔어나왔다.

“핑계 댄다꼬 모를 줄 압니꺼. 우리 집하고 명자언니네 집하고 얽힌 일 벌써부터 알고 계싰지예?”

명자라는 말이 나오자 말자 양지의 말을 자른 즉각적인 아버지의 반응이 나타났다.

“요것 봐라. 엉뎅이 뿔나드키 나쁜 년. 씨잘데없는 남의 소리는 솔곳하기 들음서 와 애비 말은 풋방구 만도 안 여기고, 그딴 소리 천소리 만소리 한다캐도 내하고는 상관없는 얘긴께”

“명자언니네 작은할아버지가 연변에서 오게 돼 있다는데 상관이 없기는 왜 없다캅니꺼”

“그 딴 똥기저귀 차고 사는 늙다리가 오기는, 언제 죽은 영장이 돼서? 오뉴월 귀뚜리 닮아서 아는 것 많아서 좋겄다. 그리 잘 아는 년이, 애비가 그리 칠푼이 아니라는 거는 와 모리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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