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48)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48)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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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48)

“우겨서 되는 게 있고 안되는 게 있는데, 고집 부리지 말고 옛날 어른들이 한 일이니 잘 몰라서 그랬다 사과하고 화해하이소. 모르는 척 뻗대봤자 손가락질만 받게 돼 있는 거 내가 다 안본 줄 압니꺼”

“건방진 년 니까짓게 뭐이관데 이래라 저래라 애비를 갤칠라꼬 드노. 도대체 니년이 뭐인데 상관을 하노. 내하고 무신 관곈디. 본데 없는 부상년도 그리는 안한다. 집에 부리는 종놈도 아니고 먼 길 간 애비를 그리 푸대접하는 자식이 어데 있노. 읍내 장에 가서 계란 몇 판 사다줄까? 다른 집 딸자식들 하는 것, 니도 눈 있는 년이 그 따구 짓을 하모 우짤 낀데”

양지는 속으로 뜨끔했으나 명자네를 염두에 둔 아버지의 비아냥에 자신도 몰래 픽 나오는 냉소를 막지 못했다. 당신은 언제 자식 대접이나 제대로 해 준 적 있느냐고, 성남언니를 대접해서 잘 키웠다면 명자언니만 못했을까보냐, 이제와서 그들을 부러워하는 그 심뽀는 어떤 양심에서 나온 망령이냐. 며 튕기고 되받고 싶은 대꾸는 그나마 꾹 눌러서 참았다. 늙은이한테 남는 건 눈치 밖에 없다는 소리는 부영감으로부터 들은 상식이다.

무엇이 아버지에게 이런 힘을 주었을까. 자취방에서 보였던 모습하고는 천양지차로 기승한 아버지는 무시하는 눈길로 양지를 쏘아본 뒤 힁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이제 스스로 문제 해결할 방법을 취하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돋아 난 힘일 것이 눈치로 단박 읽혔다. 아버지는 끝내 약속한 천오백만 원을 모으기 위해 고목을 목재상에다 넘겼다는 실토는 하지 않았다. 양지 역시 아버지가 ‘소원성취’ 한데 대한 그 어떤 비난도 관심도 드러내지 않았다.

듣다보니, 곱새겨 보니 더욱 울화가 치솟는 모양. 어깨 위로 메어 올리던 베틀 묶음을 패대기치듯 내려놓으며 아버지가 내뱉었다.

“야 이 잘난 년아. 네가 뭐이관대 애비가 하는 일에 그리 제재가 심하노. 내가, 이 최 태뵉이가 운재 딸자슥 눈치보고 살더나. 저녁에라도 니에미가 오거등 내가 왔다갔다 캐라”

암호 같은 말을 남긴 아버지는 빈 몸으로 휑하니 중문을 나가 버렸다. 가래침을 긁어 뱉는 소리만 바깥마당에 떨어뜨려놓은 채.

아버지라서 차마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지만 솟구치는 증오와 울분으로 치면 달려가서 목덜미라도 낚아채서 그가 패대기치고 간 베틀과 똑같이 해주고 싶었다. 첨예하게 되살아나는 두 가지의 대비된 기억 때문이다. 그것도 성남언니와 단짝으로 지내던 명자언니 아버지와 관련된 사건으로 두 아버지의 비교 정황은 오늘 더욱 뚜렷하게 되살아났다.

첫 번째는 보릿고개라는 드높고 험한 고개를 넘을 때의 일이다. 장리로 얻어 온 쌀도 바닥 난 대개의 집 사람들은 무시래기처럼 삐쩍 마른 몸과 마른버짐 핀 무표정한 얼굴로 다음 농번기를 준비하는 막연한 하루하루 속을 고행하는 순교자같은 자세로 묵묵히 이어가고 있었다. 가족의 호구를 책임 진 어른들조차 도둑질이나 강도질 못하는 양심에 눌려 애태울 뿐 다른 뾰족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그냥저냥 긴 목숨이나 연명시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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