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4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49)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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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49)

그 무렵 새마을 바람이 불어닥쳤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전국을 들썩거리게 한 그 노래는 양지네 마을에도 예외없이 구석구석 휘돌아치며 쳐져있는 분위기를 일으켜세웠다. 이 노래가 들리면 아무리 늦잠꾸러기 게으름뱅이라도 송신하고 부끄러워서 잠자리를 떨치고 일어나게 되었다.

집안일을 밤으로 미룬 사람들은 새마을 사업장에 나가서 시키는 일을 했다. 전에는 도로나 하천 보수를 해도 부역으로 끝났지만 일한 만큼 밀가루나 콩 옥수수 등의 현물일망정 노동의 댓가를 받을 수 있으니 너도 나도 열심히 일장의 정보를 얻어 작업장으로 나갔다.

양지가 눈을 뜨면 그때 벌써 언니는 밭으로 나가고 없었다. 부지런히 집안일을 해놓고 동네 언니나 아주머니들과 어울려 새마을 사업장에 나가기 위해서였다. 도대체 언니는 잠을 자는지, 잠들 때도 깨어나서도 양지는 잠자리에서 언니를 본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였다. 오늘은 신작로 공사장에 갈까 아니면 지난해에 무너진 제방축을 쌓는데 가서 대야로 흙이나 돌을 여다 나를지도 모른다. 아니 벌거숭이 민둥산에 어린 묘목을 심거나 산사태 방지를 하는 사방공사장에 나가 조성된 계단참에 풀씨를 뿌릴지도 모른다. 언니는 요즘 신이 나서 어른들을 따라다녔다. 노임으로 주는 밀가루도 벌써 여러 부대다. 옥수수나 납작 보리쌀을 받아 올 때도 있었는데 옥수수는 절구로 알뜰하게 대낀 뒤 밥을 지어먹기도 했다. 먹을 것이 넉넉해지니 어머니도 언니도 자주 편한 웃음을 웃었다.

그런데 하필 어머니까지 공사장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화가 난 아버지는 부엌 앞에 놓여있는 구정물 통을 눈에 보이는 대로 쳐들더니 어이딸을 향해 내던졌다. 마침 언니는 잽싸게 뒤꼍으로 도망치는 바람에 어머니만 시큼하게 부패한 구정물을 흠뻑 뒤집어썼다. 어머니는 묵묵히 업수건 썼던 무명베 수건을 벗어 얼굴을 닦은 뒤 저녁준비를 했다. 체면 깎인 화를 못 삭이고 씩씩거리던 아버지는 기어코 밥상에 얹힌 장떡을 내던지며 다시 밥상을 차버렸다.

“내가 아무리 죽은 뭐이라캐도 가장은 가장인데 내가 한 분 안된다카모 안해야 될꺼 아이가. 에미가 가장 알기를 물똥 싼 개 밑구녕 모냥으로 아니 딸년들이 뭘로 보고 배울끼고. 이 따우껏 배터지게 쳐묵고 천 년 만 년 살라꼬?”.

깨진 된장그릇을 치우고 쏟아진 된장을 쓸어담고 흩어진 장떡 쪼가리를 천천히 집어담는 어머니의 뒤통수를 겨냥해서 아버지의 호통은 계속 쏟아졌다. 그 고집스럽고 묵묵한 뒷모습을 노려보던 아버지의 일갈과 함께 때꼽 낀 양말 뭉치가 어머니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사람 말이 돼지새끼 방귀소리만도 몬하나. 다시 더 안한다 한다 말이 있어야 될꺼 아이가! 또 다시 한 번 이 최태뵉이 낯에 똥칠하는 짓 하러 나갔다간 다리몽댕이 뿌러질 줄 알라꼬 내가 캤나? 안캤나?”

외척의 알음으로 얻어 온 장리나락을 꾸어다 먹은 것도 벌써 바닥이 난 것을 어머니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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